김 지사도 “지난 1년의 투자협약을 실현하면 6만3천명을 고용한다”고 기염을 토한다. 조선일보는 지난 1년간 김 지사가 127개 기업을 유치했다고 칭송한다. 전북은 전국 15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실업률은 낮은 편이지만, 고용률 또한 낮아 적극적인 고용창출이 필요하다. 고용의 질은 어떨까. 지난해 4~5월 청년유니온이 전국 400여개 편의점 알바생을 조사한 결과 시급 4천110원이던 당시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청년이 절반을 약간 넘었다. 그런데 전북과 광주는 그 비율이 80%를 넘어 전국 최악의 청년 알바시장이었다.
고용 숫자 늘리면 뭐하나. 싸구려 일자리만 늘어나는데. 화섬업체 효성이 어떤 회사인가. 10여년 전 울산에서 노조를 박살낸 그 회사가 노동자들의 고용의 질을 보장할 리 없다.
김 지사는 환경단체의 반발에도 강행한 새만금산업단지에 중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보세구역을 지정하고 중국인 부동산 투자자에게 영주권을 주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김 지사는 더러운 돈, 눈먼 돈 다 끌어들인 쌍용자동차의 중국법인 상하이자동차의 악몽쯤은 안중에도 없다. 민주당이 전북에서 해 온 역할은 전주 버스파업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최저임금 선상에서 일해 온 버스노동자가 지난 반 년 동안 파업을 했지만 여전히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 파업에서 김 지사와 전주시장이 보여 준 행동은 영남권에서 한나라당 단체장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민중은 서로 닮은 두 권력 사이에서 반세기 넘게 치여 왔다.
두 권력은 이 나라 정치만 결딴낸 게 아니다.
문학평론가 윤지관 교수는 <4·19 묘역에 새겨진 시 혁명정신은 간데없고...>(한겨레 16일 11면)란 기사에서 수유리 4·19 묘역 돌판에 새긴 12편의 시가 대부분 보수성향 시인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묘역을 만든 문민정부의 모호한 정치적 위상 때문이었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묘역의 시비를 김수영·신동엽·고은·신경림의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윤 교수가 언급한 시인 가운데 요절한 김수영과 신동엽을 제외한 나머지는 4·19를 대표할 수 없다고 본다. 윤 교수와 한겨레는 시인 구상의 <진혼곡> 시비에 시비를 걸었지만, 당시 구상은 4·19에 열광했다. 우리에겐 시인 구상처럼 4·19에도, 5·16에도, 5·18에도,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등 모든 권력에 열광했던 비논리적인 시인들이 참 많다. 죽은 두 시인을 뺀 나머지 시인들이 지난 10년의 민주당 정권 때 시인다운 날카로움을 견지했는지 의문이다.
4·19 묘역엔 김수영이 60년 4월26일 새벽에 쓴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가 제격이다. (우리 모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김수영이 결별하자고 했던 ‘어제’는 지주와 친일파·매판자본으로부터 시작하는 모든 낡은 권력이다. 43년 전 6월15일 어처구니없는 시인의 죽음이 새삼 서럽다.
혁명의 시인 김남주가 자신의 창작세계관을 다룬 책 ‘시와 혁명’에서 “내가 칠레의 혁명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처음 안 건 69년 고 김수영 시인이 번역해 창비에 실은 9편의 시를 통해서였다”고 고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