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지난해 6·2 지방선거 이후 취임 1년을 맞는 광역단체장들을 연속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 15일자 16면엔 김완주 전북지사를 만났다. 기사는 김완주 전북지사가 전날 (주)효성 대표를 만나 친환경 첨단복합단지에 1조2천억원을 투자해 탄소섬유 공장을 짓는 투자협약 서명식으로 시작한다. 기사의 제목은 “일자리 찾아 전북 떠나지 않게 하겠다”였다. 곁들인 사진엔 야구장에서 시구하는 모습을 실어 김 지사가 ‘전북을 먹여 살릴 구원투수’임을 밑자락에 깔았다.

김 지사도 “지난 1년의 투자협약을 실현하면 6만3천명을 고용한다”고 기염을 토한다. 조선일보는 지난 1년간 김 지사가 127개 기업을 유치했다고 칭송한다. 전북은 전국 15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실업률은 낮은 편이지만, 고용률 또한 낮아 적극적인 고용창출이 필요하다. 고용의 질은 어떨까. 지난해 4~5월 청년유니온이 전국 400여개 편의점 알바생을 조사한 결과 시급 4천110원이던 당시 최저임금도 못 받는 청년이 절반을 약간 넘었다. 그런데 전북과 광주는 그 비율이 80%를 넘어 전국 최악의 청년 알바시장이었다.
 
고용 숫자 늘리면 뭐하나. 싸구려 일자리만 늘어나는데. 화섬업체 효성이 어떤 회사인가. 10여년 전 울산에서 노조를 박살낸 그 회사가 노동자들의 고용의 질을 보장할 리 없다.

김 지사는 환경단체의 반발에도 강행한 새만금산업단지에 중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보세구역을 지정하고 중국인 부동산 투자자에게 영주권을 주는 방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김 지사는 더러운 돈, 눈먼 돈 다 끌어들인 쌍용자동차의 중국법인 상하이자동차의 악몽쯤은 안중에도 없다. 민주당이 전북에서 해 온 역할은 전주 버스파업으로도 충분히 입증된다. 최저임금 선상에서 일해 온 버스노동자가 지난 반 년 동안 파업을 했지만 여전히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 파업에서 김 지사와 전주시장이 보여 준 행동은 영남권에서 한나라당 단체장의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민중은 서로 닮은 두 권력 사이에서 반세기 넘게 치여 왔다.

두 권력은 이 나라 정치만 결딴낸 게 아니다.
문학평론가 윤지관 교수는 <4·19 묘역에 새겨진 시 혁명정신은 간데없고...>(한겨레 16일 11면)란 기사에서 수유리 4·19 묘역 돌판에 새긴 12편의 시가 대부분 보수성향 시인의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묘역을 만든 문민정부의 모호한 정치적 위상 때문이었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묘역의 시비를 김수영·신동엽·고은·신경림의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윤 교수가 언급한 시인 가운데 요절한 김수영과 신동엽을 제외한 나머지는 4·19를 대표할 수 없다고 본다. 윤 교수와 한겨레는 시인 구상의 <진혼곡> 시비에 시비를 걸었지만, 당시 구상은 4·19에 열광했다. 우리에겐 시인 구상처럼 4·19에도, 5·16에도, 5·18에도,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등 모든 권력에 열광했던 비논리적인 시인들이 참 많다. 죽은 두 시인을 뺀 나머지 시인들이 지난 10년의 민주당 정권 때 시인다운 날카로움을 견지했는지 의문이다.

4·19 묘역엔 김수영이 60년 4월26일 새벽에 쓴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가 제격이다. (우리 모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김수영이 결별하자고 했던 ‘어제’는 지주와 친일파·매판자본으로부터 시작하는 모든 낡은 권력이다. 43년 전 6월15일 어처구니없는 시인의 죽음이 새삼 서럽다.
혁명의 시인 김남주가 자신의 창작세계관을 다룬 책 ‘시와 혁명’에서 “내가 칠레의 혁명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처음 안 건 69년 고 김수영 시인이 번역해 창비에 실은 9편의 시를 통해서였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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