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에게만 적용되는 줄로만 알았던 DNA 채취를 내가 당하게 되니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삶의 터전과 일터를 지키려 했을 뿐인데 흉악범 취급을 받았어요.”

서아무개씨는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쌍용차지부가 벌였던 지난 2009년 옥쇄파업에 참여했다. 그는 파업에 참가한 죄목(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으로 지난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서씨에게 DNA 채취를 요구하는 검찰의 ‘출석 안내문’이 도착한 것은 지난 3월이었다. 흉악범 취급을 받아 수치심을 느끼면서도 DNA 채취에 응한 이유에 대해 그는 “해고와 오랜 파업, 이후 수사와 재판에 지쳐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검찰이 요구해 따라야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16일 서씨와 용산참사로 구속돼 중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는 김아무개씨 등 5명이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DNA법이 사실상 강요나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개인의 DNA 정보를 채취하도록 허용해 인격권과 인간의 존엄·가치, 사생활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소송을 준비해 온 진보네트워크·민변·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DNA 채취는 국가폭력의 피해자인 노동자와 철거민을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류제성 변호사는 “입법취지는 살인이나 아동 성폭력 등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강력범죄를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입법 과정에서 적용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졌다”고 지적했다.

DNA 채취가 ‘연좌제’의 변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 활동가는 “DNA 채취법이 한국에 앞서 통과된 영국의 경우 ‘패밀리 서치’로 가족까지 관리하고 있다”며 “한국의 경우도 그럴 소지가 다분하며 이것은 신연좌제”라고 말했다. 소송 청구인이면서 기자회견에 참석한 서씨는 “DNA채취 후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면 숟가락을 휴지로 닦고 나오는 습관이 생겼다”며 “채취한 DNA를 영구적 보존한다는데, 앞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지 자괴감이 들고, 이로 인해 자식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된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계희·윤자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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