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말 안 듣는 사람들 여기 다 모였다. 다음주 있을 기말고사를 팽개치고 왔다는 복학생, 우르르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노조원들, 학부형 손까지 붙들고 온 불량(?) 교사, 전날 미국 LA발 인천 영종도행 야간비행을 마쳐 시차적응도 안 됐다는 비행기 조종사, 앞으로 드라마 배역을 맡을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런 여배우까지….

지난 11일 자정을 넘긴 시간 부산 영도구 봉래동 네거리. 서울·전주·순천·수원·평택·하남에서 840여명의 시민들이 ‘희망의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500여명의 부산 시민들이 각지에서 온 ‘버스 사절단’을 환영했다. 야심한 시각 이들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더 이상 용접불꽃이 튀지 않는 ‘절망의 조선소’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로 향하는 이들의 뒤꽁무니를 <매일노동뉴스>가 따라 걸었다.

12일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희망의 버스 행사 참가자들이 기차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제공=노동과세계 ⓒ 매일노동뉴스


“사다리 타기, 이게 얼마만이여”

봉래동 네거리에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까지, 어른 걸음으로 10분이면 도착하고도 남을 이 거리에 정복 차림의 경찰이 쫙 깔렸다. 경찰 13개 중대가 조선소 주변에 배치됐다. 경찰은 9번에 걸쳐 집회 해산을 종용하는 경고방송을 내보냈다. 촛불을 손에 든 느림보 대오는 30여분 만에 조선소 정문 앞에 도착했다.
 
조선소 안으로 통하는 각 정문들은 이미 봉쇄된 상태. 본관 정문 역시 노란색 헬멧을 쓴 사설경비용역들이 버티고 섰다. 몸싸움 없이 조선소 진입이 어려운 상황. 바로 그때 수십 개의 사다리가 나타났다. 문이 막혔으니 사다리를 타고 담을 넘자는 작전이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그 많은 사람들이 사다리를 타고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야~. 사다리 타고 담 넘는 게 얼마만이여. 옛날 생각나네.” 늙수레한 노동자가 무심히 한마디 던진다.

아버지들의 감격

조선소 안. 두 명의 ‘아버지’가 눈에 띈다. 박창수 열사의 의붓아버지 황지익옹과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옹이 그들이다.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낸 두 노인은 “이렇게 와 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전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이었던 박창수 열사가 사망한지 올해로 20주기에 접어들었다. 고인은 91년 5월6일 구치소에서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의문사했다. 그의 아버지 황지익옹은 “아들 떠난 자리를 이렇게 메워 준 여러분들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감격해했다.

87년 1월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아 숨진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옹은 이날 ‘제7회 박종철인권상’을 전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조선소 내 35미터 지브크레인 85호기 위에서 5개월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심사위원 전원의 지지를 받아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정기옹은 “절박한 상황을 이겨 가고 있는 그에게 격려와 연대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행사 참가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하고 있는 85호 크레인에서 희망의 바람개비를 날리고 있다. 사진제공=노동과 세계 ⓒ 매일노동뉴스

로프 타고 올라간 트로피


허공에서 외롭게 싸우고 있는 김 지도위원을 응원하기 위해 주말의 휴식을 마다하고 관광버스를 대절해 이곳까지 온 무리들이 아니던가. 시상식이 시작되고, 85호기 크레인 아래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허공에 매달려 있는 그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김 지도위원의 수상소감이 시작됐다. 사람 울리기 선수인 그의 연설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눈물바람이다. 일부를 옮겨 본다.

“여러분 우리 조합원들 한번 봐 주십시오. 평생 일한 직장에서 아무 잘못 없이 쫓겨난 사람들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퇴거압력에 손해배상 가압류에 경찰서 몇 번씩 불려다니고 가족들 성화까지 견뎌 가며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다. 저 지친 어깨에 가족들 생계를 걸머지고 밤엔 절망으로 쓰러지고 아침이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희망을 찾아 기를 쓰고 버텨 온 사람들입니다. (중략) 저는 우리 조합원들이 혁명적 투지로 무장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6개월 전까지 살아왔던 삶을 지켜 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저녁이면 땀냄새 풍기며 집에 돌아가 새끼들 끼고 저녁 먹고 여러분들이 오늘까지 누려 왔던 그 소박한 일상들을 지켜 내고 싶은 것뿐입니다. 술만 먹으면 박창수·김주익·곽재규 이름을 부르며 우는 저 못나 빠진 사람들. 가슴 속 맺힌 한을 이제 그만 풀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8년을 냉방에서 살았던 저의 죄책감도 이제는 좀 덜어 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8년 ‘냉방 고문’도 모자라 이날로 158일째 찬바람 맞고 있는 그에게 트로피가 전달됐다. 트로피는 로프에 매달려 그에게로 갔다. 아래쪽을 향해 그가 외쳤다. “상 받으니까 좋다~”
이런 날 술판이 빠지면 서운하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준비해 온 어묵탕을 안주 삼아 소주잔이 돈다.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세 잔 되더니, 어슴푸레 동이 터온다. 청개구리 같은 사람들은 해 뜨니까 자러 간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에서 환호하고 있다. 사진제공=노동과 세계 ⓒ 매일노동뉴스


“외로워 말라, I’ll be back”

잤으니 또 먹어야지. 문정현 신부와 ‘평화바람의 꽃마차’ 회원들이 밥차를 준비해 왔다. 밥을 만 육개장에 김치·깍두기로 배를 채운다. 수백인분의 밥이 금세 동이 났다. 그 사이 영화배우 김여진씨 등이 조선소 밖으로 나가다 경찰에 긴급 연행됐다 곧바로 훈방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모여들었던 각양각색의 사람들도 하나 둘 일상의 공간을 찾아 되돌아갔다.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 나간 조선소는 다시 우울한 색조를 띠기 시작했다. 현재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은 100여명에 불과하다. 언제 다시 1천 명이 넘는 사설경비원들이 몰려올지 모를 일이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얻어맞고 쫓겨날지 모를 일이다.

‘희망의 버스’로 이름 붙여진 관광버스를 타고와 ‘1박2일’ 이벤트를 벌이고 돌아간 그 많은 사람들은 망치 소리 들리지 않는 이 어둠의 조선소에 어떤 희망의 흔적을 새겨 놓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외로워 말라. I’ll be back”이라는 무언의 약속이었을 것이다.

나는 왜 ‘희망의 버스’에 올랐나
“가족과 함께 왔다. 평소에 엄마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직접 와 보니 무섭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응원하고 있으니 힘내시라고 전하고 싶다.”<최솔비(16) 인천 중학교 3학년>
“장기간 투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이 어려서 놀러 간다고 했다. 꼭 승리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란다.”<권희준(41) 고양시 대안학교 교사>
“학부모님들이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희망의 버스에 타자고 제안하셨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이아무개(42) 순천시 중학교 교사>
“아이들에게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현장을 보여 주고 싶어서 왔다. 그런데 도착해서 경찰과 용역들이 막아서고 몸싸움 하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한진중공업 해고자 분들 힘내시길. 우리 아이들도 함께합니다.”<김선숙(43) 순천 주부>
“인터넷 기사를 통해 희망의 버스를 알게 됐다.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그동안의 싸움에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참가했다.”<대학원생 김태훈(29)씨>
“몇 년 전 김진숙 지도위원의 강연을 듣고 한진중공업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끝까지 지지하겠다.”<최은미(36) 외국인이주노동자협의회 간사>
“대학생의 삶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삶이 별개가 아니라는 생각에 연대하게 됐다.”<조금득(28) 청년유니온 사무국장>
“오늘 용역깡패를 처음 봤다. 정말 무서웠다.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박준희(24) 부산대 4학년>

윤자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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