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최근 박종철인권상을 받았다. 민주열사 박종철은 87년 6·10 민주화운동의 불씨였다. 박종철은 경찰의 고문에 목숨을 잃었고, 군사독재정권은 이를 은폐하려 했다. 이 사건은 노동자·시민의 격렬한 저항을 촉발시켰고, 사실상 6·10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박종철기념사업회는 사회민주화에 헌신한 이들에 대한 격려와 연대의 뜻으로 인권상을 제정했으며, 올해로 7회째다.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내 지브크레인 85호기 위에서 5개월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면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출신이다. 81년 용접공으로 입사한 김 지도위원은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노조라면 빨간딱지부터 붙이는 회사측은 김 지도위원을 쫓아내는 데 혈안이었다. 회사측은 86년 7월 ‘회사 명예 실추, 상사 명령 불복종’ 등의 사유로 김 지도위원을 해고했다. 명백한 부당해고였다. 그럼에도 김 지도위원은 명예를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11월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해고자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야 했던 김 지도위원에게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납득되지 않았다. 한진중공업 노사는 2007년 특별단체협약을 통해 인위적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금지, 경영악화시 해외공장 축소 등에 합의했다. 그럼에도 회사측은 2009년부터 부산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이때부터 정리해고·아웃소싱·희망퇴직으로 1천500여명의 노동자가 공장을 떠나야 했다. 회사측은 ‘영도조선소에는 일감이 없다’는 이유로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반면 한진중공업 해외공장인 필리핀 수빅조선소에는 3년치 일감을 쌓아 둔 상태였다. 수빅조선소에는 약 7천억원의 한진중공업 자금이 투자됐다.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다.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조선소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려는 시나리오에 따라 부산 영도조선소의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회사측은 경영이 어려울 때 해외공장의 물량을 축소하자는 노사의 특별단체협약을 깡그리 무시했다. 부산 영도조선소 노동자만 해고라는 살처분을 당했다.

최근 대법원은 경북 포항 소재 강관제조업체 진방스틸코리아의 정리해고 사건에 대해 해고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판결을 내렸다. 정리해고의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에 대해 적어도 기업이 존폐위기에 몰리거나 예상치 못한 급격한 경영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진방스틸코리아 노사가 합의한 고용안정협약은 유효하며, 정리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고용안정협약에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 판결은 한진중공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진중공업은 적어도 기업 존폐위기까지 내몰리지 않았다. 영도조선소의 일감이 없을 뿐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잘나가고 있다. 경영이 어렵다는 기업에 어울리지 않게 대주주 일가는 지난해 200억원 넘는 배당금을 챙겼다.

이런데도 부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달 6일 “희망퇴직을 받는 등 해고 회피를 한 점이 인정되고, 해고절차에 하자가 없다”며 한진중공업에 면죄부를 줬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요건에 대해 세심하게 살폈어야 하는데도 부산지노위의 판정문에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 해고회피 노력과 해고절차라는 형식적인 부분만 따졌을 뿐이다. 부산지노위 판정대로라면 긴박한 경영상 위기가 아니어도 해고회피 노력과 절차만 준수하면 정리해고를 해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래서야 노동위원회가 부당한 해고를 당한 노동자를 구제하는 보루라고 여겨질 수 있겠는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한 부산지노위의 판정은 대법원의 판결을 비춰 볼 때 석연치 않다. 법원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5개월이 넘었음에도 김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절박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당한 정리해고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다. 그를 응원하기 위해 11일 서울에서 ‘희망의 버스’가 출발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노동자·시민들은 크레인 밑에서 1박2일 연대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희망의 버스를 타고 김 지도위원과 해고 노동자를 응원하러 가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