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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불편과 사회제도의 관계를 묻다문은영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현장)

문은영

인노무사

(노무법인 현장)

얼마 전 교대근무자의 수면장애를 산업재해로 인정한 첫 판례가 나와 주목을 받았다. 한국사회가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된 교대제근무는 당연한 제도였고, 교대제 근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불편과 문제점은 개인이 감당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이고 자신만 나이 들어 체력이 떨어져서 여기저기 아프다고 생각했다.

인류가 교대제근무를 발명한 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교대제근무 속에서 골병이 들고, 그것에서 비롯된 질병으로 고통을 받았을지 모두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교대제 근무제도와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앓고 있는 각종 질병과의 연관성을 오랜 시간 추적·연구한 결과는 개인이 겪는 질병이 근무제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각종 제도와 사회시스템으로 촘촘히 짜여 있어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없다. 한국사회는 크게 자본주의라는 체제 논리의 영향을 받고 매일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현장의 근무방식에 의해 개인의 하루 일상이 조직된다. ‘사회구조’ 속에 놓인 ‘개인’이 기본 구조다. 어떤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점은 쉽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균열을 통해 살짝살짝 드러날 뿐이다. 문제점이 양적으로 증폭해 결국 그 구조로써 그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을 때 다른 구조로의 변화가 필요로 하게 되는데, 그 전까지 사회 시스템의 문제는 개인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느끼는 제도의 문제점은 개인 차원의 불편으로 간과된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느끼는 불편과 문제점이라도 그 속에는 사회구조가 들어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개인과 사회구조와의 관계에 매우 둔감하다. 오히려 관련지어 생각하는 것을 확대해석이라고 불편해하기까지 한다.

지난해 지각을 3회했다는 이유로 정직 5일의 징계처분을 당한 버스노동자 사건을 맡아 처리한 적이 있었다. 운 좋게 부당징계를 인정받았는데, 회사는 올해 2월 같은 사유로 정직 3일의 처분을 다시 내렸다. 이번 구제신청 결과는 기각이었다.

이 사건에서 내 관심은 지각을 부른 ‘근무제도’에 있었다. 이 버스 사업장 노동자들은 오후 근무(12시간)와 오전 근무(6시간)를 중간에 잠깐의 휴식시간을 두고, 이어서 하고 있었다. 장시간 근무 뒤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3~4시간 토막잠을 자고 난 뒤 일어나 다시 출근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생체리듬을 거스르는 근무형태다. 근무형태 때문일 것이 뻔한, 1년에 1번 정도 지각한 것이 징계 중 해고를 빼고 제일 무겁다는 정직 처분의 사유였다.

이 버스 노동자만 극심한 졸음을 참고 출근하면서 지각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졸음운전을 걱정하고 있을까. 심문회의에 참석한 위원들과 관계자들의 태도는 이 사회의 개인과 사회구조 간의 관계를 인식하는 수준을 보여 준다. 심문회의 현장을 보자. 일단 이러한 ‘사소한’ 사건을 지노위에 들고 와서 지노위의 엄청난 업무량을 증가시켜서 유감이라는 의견을 잊지 않는 상임위원은 근무형태의 문제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징계양정에서 적당히 합의할 것을 종용했다. 상대편 노무사는 징계 여부와 그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사업주의 자유재량이라며 소리를 ‘빽빽’ 질렀다.

현 근무제도를 노조의 이익 때문에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사측을 대변하러 왔던 그 버스회사의 노조위원장은 “네가 정신상태가 똑바르지 못해서 지각한 것을 왜 근무형태 때문이라고 억지주장을 해서 나를 곤란하게 만드느냐”고 의뢰인에게 훈계했다. 그들은 피로가 회복되지 못한 몸과 졸음이 채 가시지 않는 눈을 비비면서 출근하는 그 개인에 대해 생각해 봤을까. ‘졸음과 지각을 발생시키기 충분한 근무제도, 이게 문제 아니야’라고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기는 했을까.

문제의 사업장과 같은 근무제도는 현재 서울시내에서 5% 정도만 유지하고 있는 있고, 95% 이상이 주단위로 오후·오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 의뢰인은 지각한 것으로 정직 처분을 받아 그것이 억울해서 구제신청을 한 것이 아니다. 이런 근무제도가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 노동자들을 상시적인 졸음운전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 걱정됐을 뿐이다. 근무제도가 다른 사업장과 같이 개선된다면 지각으로 모욕적인 상황에서 경위서를 쓰는 일도, 지각 때문에 정직처분을 받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무엇보다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위험이 확실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문제제기 차원이기도 하다.

이 사건이 구조적 문제가 개인을 통해 드러난 사건의 표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몇 안 되는 사건을 하면서 사건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사건을 대할 때 ‘왜 의뢰인은, 또는 사건을 담당하는 나는 왜 문제라고 판단했는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소해 보이는 사건이 사소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사회구조로부터 개인이 겪는 불편이 사회적 해결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집요하게 묻고 또 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문은영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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