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한국무역협회 최고경영자 조찬회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으로서 마지막 외부강연을 했다. 이날 박 장관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연간 2천시간을 넘게 일하는 장시간 노동국가”라며 “2012년까지 연간근로시간을 1천950시간으로 축소해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앞서 같은달 25일 노동부는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교대제 실태파악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유성기업에 경찰력이 투입돼 어수선한 상황에서 부랴부랴 노동시간단축을 공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노동부 관계자는 “노조가 요구한 주간연속 2교대제는 바람직한 제도”라고 규정했다.

박재완 장관이나 노동부의 주장은 유성기업에 경찰력을 투입할 명분이 부족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는 ‘밤에는 잠만 자자’라며 박 장관이나 노동부가 추진한 노동시간단축을 사업장 차원에서 실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지회는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을 요구했다. 박 장관과 노동부가 진정으로 노동시간단축을 원했다면 유성기업 노사의 자율적인 합의를 지원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경찰력을 투입한 것은 현재의 장시간 노동체제를 수정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말로만 노동시간단축을 외치고 있는 셈이다.

박 장관의 말처럼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연간 노동시간이 2천시간이 넘는 유일한 나라다. 2009년 기준 OECD 회원국 중 한국은 2천74시간으로, 미국(1천776시간)·일본(1천733시간)·캐나다(1천699시간)·독일(1천309시간)에 비해 월등히 높다.

2003년 8월, 주 40시간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 8년여가 흘렀다. 올해 7월부터 20인 미만 사업장에도 이 제도가 시행된다. 법정노동시간이 4시간 줄어들었음에도 연간노동시간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훨씬 높은 이유가 뭘까. 법정노동시간을 줄였지만 연장근로는 사실상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간노동시간을 2천시간 이내로 줄이자는 합의까지 했지만 이후 흐지부지됐다. 2000년 5월 노사정위원회는 ‘근로시간 단축관련 기본 합의문’을 채택했는데, 법제화 과정에서 ‘연간 2천시간 이내로 단축’ 조항은 실종됐다. 결국 장시간 노동을 제어할 수 없었고, 고용창출도 기대만큼 이뤄 내지 못했다.

이를테면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주 40시간제 도입 후 연간근로일수는 235일이며, 연간 표준노동시간은 1천880시간이다. 그런데 법에 정한 연장근로시간(12시간)을 다 채우면 최대 노동시간은 연간 2천500시간에 이른다. 주말특근을 포함해 3천시간 넘게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 자동차부품 노동자도 비슷한 처지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 부품업체의 연간노동시간은 2009년 기준으로 2천752.7시간에 달한다. 이러니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가 건강권을 위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자’라고 요구한 것 아닌가. 물론 장시간 노동체제는 신규채용 비용을 줄이면서 비정규직 활용도를 높이려는 기업의 이해와 장시간 노동은 곧 임금과 고용이라는 노동자의 정서와 영합한 측면이 없지 않다.

유럽의 경우 법정노동시간의 지속적 단축과 함께 연간노동시간을 법이나 제도로 제한하는 것을 병행했다. 때문에 1천500시간 이하로 연간노동시간이 줄었고, 고용창출 효과도 컸다. 그런데도 박 장관은 이런 사정은 거론하지 않았다. 노동부의 정책을 살펴봐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노동부는 연간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장시간 노동 사업장 컨설팅, 교대제 개선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또 운수업 등 근로시간 특례(근로기준법 59조) 적용 폐지를 추진할 예정이다. 그러나 과한 노동이나 연간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나 규정은 고려하지 않았다.

유성기업 사태를 기점으로 올해 단체교섭에서 ‘주간연속 2교대제’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부가 연간노동시간을 제한하는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는 한 유성기업과 같은 노사갈등은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연간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실질적인 제도나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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