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노동자 투쟁에서 법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이다. 노동자가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을 때 투쟁의 위법성이 조금이라도 논란이 되는 경우 사용자는 불법이라고 비난한다. 노동자 투쟁의 규모나 파급력이 크다면 자본과 권력은 불법이라고 엄청난 선전공세를 펼친다. 이때 우리는 언제나 합법이라고 옹호해야 할까. 정확하게 그 투쟁은 불법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노동운동에서 법의 영역이 자신의 자리인 자로서는 수시로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법질서에 복종해 노동운동의 위법성이 고민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투쟁이 합법이 아닌 불법으로 전개돼서 고민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지금 필자는 관심 없다. 노동자 투쟁을 합법이라고 옹호해 대는 것이 과연 노동운동에서 올바른 것인가 하는 것이 고민된다. 누구나 당연히 무조건 합법이라고 옹호해 왔는데, 필자는 바보같이 그래야 하느냐고 묻고 있다.

2. 이 경우 투쟁의 주체는 투쟁은 정당하고 합법이라고 주장하기에 바쁘다. 노조와 그 대변인의 이 주장들을 쫓아가다 보면 노동자 투쟁은 언제나 합법이다. 이들 주장에 따른다면 지금까지 전개됐던 수많은 노동자 투쟁은 거의 대부분 합법인 것이었다. 이들 주장에 따른다면 앞으로도 노동자 투쟁들은 합법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중 많은 투쟁이 법원에서 불법으로 판결받았다. 그러면 뭔가. 노조가 속인 것이냐. 법원이 속인 것이냐. 둘 중 하나다. 이에 대해 노조는 말해 왔다. 법원이 노동자 투쟁을 속인 것이다. 법원은 부당하게도 자본의 편에 서서 합법을 불법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그러니 법원을 포함한 권력은 사용자의 편이지 노동자의 편이 아니라고 말해 왔다. 세상은 본래 노동자의 것이 아니다. 자본의 세상이니 법도 법원도 자본의 편인 것이 당연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것이 노동자 투쟁에서 노조와 그 대변인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노조는 분명히 노동자 투쟁이 합법이라고 주장해 왔다. 여기서 합법의 의미는 이 세상에서 합법을 말한 것이다. 현행 법질서에서 법원이 노동자 투쟁을 합법이라고 평가할 것이라고 노조는 주장했던 것이다. 노조는 결코 이 세상 법질서를 초월해서 노동자 투쟁은 합법이라고 주장했던 것이 아니다. 그건 현행법 아래서 법원은 노동자 투쟁을 합법이라고 판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래 놓고 법원이 불법이라고 판결하니 법원의 판결은 부당하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노조를 탓하려는 게 아니다. 노동자 투쟁에서 반복되고 있는 고질적인 관행에 대해 우리 모두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이에 당신들은 말할 것이다. 자본에 맞서 투쟁의 합법성 논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그랬던 것이라고.
그러나 그 노동자 투쟁이 불법인데 합법이라고 아무리 주장한다고 해도 그것이 합법이 될 수는 없다. 이미 불법이라고 판단대상이 되는 투쟁은 발생했다. 그 주장에 의해 합법으로 바뀔 수는 없다. 만약 이 상황에서 합법 투쟁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주장이 아니라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이건 주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용자가 아직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을 때 앞서 채증해야 가능하다. 특히 불법에 따른 민사책임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이 채증이 중요하다. 그것은 불법 내지 책임의 유무, 그리고 그 책임의 범위를 좌우한다. 조용히 신속하게 치밀하게 채증하는 것은 불법과 합법 논란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노조는 채증을 사실상 방치해 왔다. 사용자는 투쟁에 들어가기 전부터 벌써 채증에 혈안이지만 노조는 그렇지 못하다. 채증은 노동자 투쟁의 불법과 합법을 가를 수 있다. 노조는 합법의 주장이 아니라 합법의 채증을 해야 하는 것이다.

4. 또한 말할 것이다.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상황에서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고.
그러나 노동자 투쟁이 불법인데 합법이라고 주장해서 국민 여론의 지지를 얻겠다는 게 가능하지 않다. 노조가 말한다면 자본과 수많은 자본의 대변인들의 입이 나불거린다. 혹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그걸 위해 노조가 대중을 속여서 지지를 얻겠다는 것인데 몇 번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노조가 양치기소년이라는 걸 안다.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서 진실로 노조가 말할 때도 이제는 양치기소년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게 된다. 심지어 노동자들조차도 노조의 말을 믿지 않게 된다. 무용한 짓이다.

5. 그리고 말할 것이다. 자본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하는 상황에서 투쟁의 대오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노동자 투쟁은 대중투쟁이고 대중인 노동자들은 자본의 압박과 선전공세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법 투쟁이라고 주장하는 자본의 공세에 맞서지 못한다면 투쟁의 대오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니 투쟁을 위해서는 불법이라고 합법이라고 주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하는 것일까. 그래야 투쟁의 대오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파업 등 노동자 투쟁은 노동자대중의 투쟁이다. 그건 노동자들을 속여서 그래야 그들이 속아서 전개할 수 있는 투쟁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의식수준과 준비정도에 따라서 노동자들이 전개하는 투쟁이다. 노동자 투쟁의 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에게 불법을 합법이라고 선전한다는 것은 투쟁의 주체인 노동자들을 대상화시킨 것이다. 투쟁을 노조간부의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투쟁의 합법성을 판단할 수 없는 무지한 노동자와 판단할 수 있는 노조간부라는 틀에서 노동운동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선진분자 중심의 운동관이 뿌리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노동자 투쟁은 노동자들을 대상화시키면 실패한다. 노동자들이 투쟁의 요구와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투쟁으로 전개해야 하는 대중운동이다. 불법을 합법이라고 노조가 선전한다고 해도 자본과 그 대변인들은 불법이라고 엄청난 공세를 펼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쟁은 요구의 논란이 아니라 자칫 행동의 합법과 불법의 논란으로 전개되고 노조는 궁지에 몰릴 수 있다. 불법을 합법이라고 했기 때문에 논란이 계속될수록 노조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제 투쟁은 불법 여부가 논의의 중심이 되고, 책임의 문제로 귀속되고 만다. 투쟁이 합법이 아닌데 합법이라고 주장했을 경우 불법을 전제로 한 자본과의 타협은 어렵게 된다. 합법인데 불법이라고 하는 자본의 탄압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본의 편만 드는 권력이 있을 뿐이다. 온통 합법을 불법이라고 매도하고 탄압하는 자본과 권력의 세상만 보인다. 법원까지도 한통속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합법이라는 노조의 주장만 남는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은 노동자대중이 전개하는 투쟁이라서 자신의 투쟁에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철저히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투쟁의 방향과 수위를 정하는데 중요한 판단자료가 될 합법과 불법의 판단에 관해서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설사 투쟁의 불법이라 판단된다고 해서 그러면 투쟁은 더 이상 전개되기 어렵다고 겁먹을 일이 아니다. 투쟁을 전개할지 아닐지 그건 노동자들이 판단할 문제다. 산별노조·총연맹 등에서 투쟁하는 해당 노동자들이 불법 투쟁이라는 걸 알게 되면 투쟁이 계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해서 제멋대로 합법이라고 선전해서는 안 된다. 요구가 절박하고 따라서 그 책임을 감수하고서라도 투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불법이라도 노동자들은 투쟁할 것이다. 오히려 사태를 투쟁의 합법 불법 논란으로 전개시켜 버린 것이 노동자들의 행동을 주저하게 만들고 만다. 요구가 노동자의 권리 확보를 위해 반드시 관철돼야 하는 것이고 그걸 위해 투쟁하도록 하면 된다.

6. 지금까지 노동자 투쟁에서는 투쟁이 합법이라고 선전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법원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이러한 판결들이 나오면 본래 합법인 것을 자본의 편에선 법원이 불법이라고 판결한 것이라고 넘어간다. 그렇게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는 외부의 탓으로 돌려졌다. 그러니 노동자 투쟁을 평가할 게 없었다. 자본과 권력이 문제지 투쟁이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래서는 노동운동은 언제나 제자리 뛰기일 수밖에 없다. 투쟁을 평가해야 그 투쟁으로부터 발전된 새로운 투쟁을 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이 어렵게 된다. 그냥 자본과 권력의 엄혹한 탄압에 맞서 힘차게 투쟁했었다, 어렵게 투쟁했었다는 평가만 있을 뿐이다. 노동자 투쟁이 준비되고 시작돼 전개되고 마무리되는 전 과정에 걸쳐 합법적으로 전개되던 것이 어떻게 해서 불법으로 변화했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노조간부와 노동자들은 판단하고 대처했는지, 그 판단과 대처는 정확하고 올바른 것이었는지 구체적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이러한 평가를 할 수 없게 된다. 투쟁을 주도한 간부는 자본과 권력의 탄압을 말하는 것으로 투쟁에서 자신의 책임을 면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 투쟁을 통해서 간부를 걸러낼 수 없게 되고 그것은 노조의 실패, 나아가 이 나라 노동운동의 실패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노동자는 자본의 법질서 아래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한 것이다. 단지 이 세상의 법질서는 자본의 법질서라고 말하는 것으로 노동자 투쟁을 평가하는 짓은 투쟁을 평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책임져야 할 자가 책임 지지 않기 위해.

7. 노동자 투쟁이 불법인 것을 불법이라고 판단한다고 해서 노동자와 노동자의 투쟁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 불법이라고 비난한다고 해서 노조가 불법인데도 불법이 아니라고 말해 줄 것을 주문하고 대변자들을 불러 조합원들에게 합법이라고 교육하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건 그때만 바라보는 것이다. 차라리 우리의 투쟁이 왜 불법인가를 교육하는 것이 노동운동을 전진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현행법 질서에서 불법 투쟁인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의 자산이 되고 다음 투쟁에서 노동자는 조금 더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다. 그리고 당해 투쟁에서도 불법을 합법이라고 속여서 그에 따라 노동자가 행동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 투쟁은 방향을 그르칠 수밖에 없다. 투쟁의 방향과 수위가 합법이라는 전제에서 노동자들은 결정하고 전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투쟁은 불법이 됐다고 알리고 거기서 어떻게 투쟁을 전개할 것인지 노동자들이 결정하게 해야 한다. 어차피 노동자 투쟁은 노동자대중의 것이다. 노동자들이 결정하고 행동할 투쟁이다. 혹 노동자 투쟁은 이 세상 법질서를 위반 여부를 떠나 정당한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노동자 투쟁이 노동자의 권리확보를 위한 것이라면 당연히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 투쟁이 합법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건 투쟁의 주체인 노동자들에게 이 세상 법질서가 합법이라고 판결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지금까지 혼동해 왔다. 투쟁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혼동해서는 이 나라 노동운동은 노동자 권리확보를 위해서 전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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