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자기 목을 베었다가 도로 살아나게 된 한 남자가 교수형에 처해졌소. 자살의 죄목으로 그를 교수형에 처한 거요. 의사가, 그를 교수형에 처하려면 그의 목의 상처가 벌어져 그 틈구멍으로 숨을 쉬게 될 것이므로, 교수형은 불가능하다고 이미 경고했는데도 말이요. 사람들은 의사의 충고엔 귀기울이지 않고서 그 사람을 목매달았소. 당연히, 그 사람 목의 상처가 당장 벌어져 목을 졸랐는데도 또다시 살아나게 되었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시(市) 참사회원을 소집하는 데 시간이 걸렸소. 드디어 참사회원들이 모여, 그 사람 목의 상처난 자리 밑을 꼭꼭 졸라매었소. ‘그 사람이 마침내 죽을 때까지’ 말이요. 오 나의 메리, 이 무슨 놈의 미치광이 사회이며, 어리석은 문명이란 말이요.”

알프레드 알바레즈가 자신의 책 ‘자살의 연구’에서 인용한 편지글이다. 원글은 E.H Carr의 ‘낭만의 망명객’에 나오는 니콜라스 오가레프(Nicholas Ogarev)의 편지다. 그리 먼 옛날 중세시대의 일도 아니고 바로 전 세기인 20세기 초반의 사건인 것이 놀랍다.
너무 야만적이라 눈살이 찌푸려지는가. 그럼 이런 이야기는 어떤가. 택시 노동자인 A씨는 지난해 소속 노조의 위원장에 출마했다. 선거 당일 투표에 참가했던 조합원이 기표한 투표용지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었던 사실이 발각됐다. A씨는 선거관리위원회에 가서 부정선거 우려가 있다며 항의했으나 선관위는 별 문제가 없다며 투표강행 방침을 밝혔다. 기표된 자신의 투표용지를 촬영하는 행위는 IT강국 대한민국에서 최근 유행하는 부정투표의 신종사례다. 몇몇 사업장에서 회사쪽이 노조 선거에 지배·개입하기 위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사용해 세간에 유명해졌다.
후보자인 A씨로서는 당연히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선관위는 A씨의 이의를 묵살했다. A씨는 선관위 사무실을 나와 회사 근처의 페인트 가게에 가서 시너 0.5리터를 구입했다. 다시 철물점에 들러 재봉틀용 기름통 6개를 구입한 뒤 시너를 기름통에 나눠 채우고 선관위 사무실로 돌아갔다. 선관위 사무실에서 기름통 2개 분량의 시너를 자신의 머리에 뿌리고 분신을 시도했으나 주변의 사람들이 막아 다행히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A씨는 어떻게 됐을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씨를 연행한 뒤,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A씨가 “죽여 버리겠다”며 상대후보에게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지르려고 했다는 게 구속영장 상 기재된 범죄사실이다. ‘민주노조’를 만들어 보려고 선거에 출마했지만 그 소박한 꿈이 부정선거로 인해 좌절되자 분신이라도 하고 싶었던 A씨. 그는 이렇게 살인미수범으로 둔갑했다.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증거불충분 등의 사유로 기각됐다. 그러자 검찰은 죄목을 ‘현주건조물 방화미수’로 바꿨다. 피의자나 피해자 누구도 듣지 못했고 유일하게 검찰의 영장청구서에만 존재했던 “죽여 버리겠다”는 얘기는 이제 사라졌다. 아마도 검찰과 경찰의 귀에만 환청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A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절박했던 심정을 절절히 호소하며 선처를 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A씨가 현주건조물 방화미수죄를 저질렀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110여년 전 영국에서 벌어졌던 일과 2010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사건 사이에 차이가 느껴지는가.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야만스럽게 느껴지는 건 동일했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은 ‘자살공화국’이다. 한국에서는 30분에 한 명꼴로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고, 자살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비롯해 생존권을 빼앗긴 수많은 노동자들도 죽음을 택하고 있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서 법과 정의는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MB정권은 중도실용"이라며 친정부적 행각을 보여 지금은 많은 이들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한때 나름 진보적인 작가였던 소설가 황석영. 그는 예전 자신의 소설 ‘아우를 위하여’를 통해 “이 겨울에 한 사람의 거지가 얼어 죽어도 그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제 몸에 시너를 끼얹고 죽겠다고 할 만큼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의 노동자를 위무하기는커녕 온갖 법조문을 들이대며 처벌하겠다고 덤비는 사람들이 한 번쯤 가슴 깊이 음미해 봐야 할 문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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