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조에는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는 것"이 법의 목적이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행정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보상 업무를 대리·대행하다 보면 현실은 이러한 목적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관계법 대부분이 그렇기야 하겠지만.

산업재해 실무를 하면서 느끼는 여러 문제점 중 ‘입증책임의 전환’과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문제’ 등 중요한 것들도 많이 있지만 몇 가지 아주 기본적인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첫째, 법과 제도 및 행정기관에서 산재노동자를 ‘보험사기꾼’이 아닌 인간(권리자)으로 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재보험은 일하다 다친 노동자에게 사업주를 대신해 국가가 보상을 해 주는 강제보험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이다. 또한 산재노동자는 업무상재해에 대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산재노동자가 보험급여를 받고 직장에 복귀하면서 겪는 현실은 권리자의 모습이 아닌 보험사기꾼과 같은 모습으로 전락되거나 수혜자로 바뀌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재해에 대한 사실관계와 출석조사 등을 주로 사업주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산재노동자는 일하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사업주에게 비굴하게 산재 처리에 대해 협조해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사실관계에 대해 사업주가 다른 진술을 하면 업무상재해(특히 질병)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산재로 승인되고 나서도 산재노동자는 권리자가 아닌 관리대상으로 전락하고, 일부 근로복지공단 직원은 보험사기꾼처럼 대하기도 한다. 산재노동자는 양질의 진료를 받으며 완치하고 싶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기간 신청권을 박탈해 버렸다. 주치의의 진료계획신청과 자문의의 결정으로만 요양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산재 장해급여 심사는 더 가관이다. 산재노동자는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사가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데 자문의사는 산재노동자의 치료경과를 서류만으로 보고 모든 것을 판단·결정한다. 산재노동자는 아픈 몸으로 근로복지공단에서 자문의사를 5분 보려고 두세 시간을 기다린다. 심사할 때 산재노동자는 더 아프고 고통스럽고 장해가 남았다고 하고, 자문의사는 산재노동자를 우선 의심하고 온 힘을 다해 관절을 꺾어 가며 보험사기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산재노동자는 산재법이나 산재제도에서 인간(권리자)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법과 제도의 방향이 바뀌고 근로복지공단 등 행정기관의 담당자들의 면면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억울하게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무상의료 등 다른 사회보험의 보장범위 확대와 산재보험 요양급여의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 왜 우리나라 노동자들이 산재보상에 목을 맬까. 이것은 다른 사회보험이 너무 열악하기 때문이다. 과로질환 한 번 앓으면 집안이 폭삭 망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니 산재보상에 목을 매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건강보험이 100% 적용돼 무상의료가 실현되고, 실업급여가 지급되거나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지금처럼 산재보상에 목을 매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 업무상재해인지 아닌지 여부는 건강보험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의 다툼의 몫일 뿐 산재노동자는 충분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그렇게 목을 매서 업무상재해로 인정을 받았는데, 엄청난 금액을 지출했던 병원비에 비해 근로복지공단에서 받는 요양비가 형편없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산재가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줄 알았는데 산재승인 이후가 더 힘들다는 분들도 있다. 건강보험 보장률도 문제이지만, 향후 산재보험 요양급여 범위를 확대해 실질적인 보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산재심사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현재는 보험급여에 대한 처분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산재심사위원회에 심사청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법에는 심사위원에 대한 제척·기피·회피 신청권이 있지만 심사청구 청구인은 심사위원회에 참석할 위원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기에 제척·기피·회피 신청권을 행사할 수 없다. 또한 구술심리 신청·증거조사 신청 등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안내해 주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심사위원들은 회의 3~4시간 동안 30~40건의 사건을 심리한다. 한 사건 당 5~10분 만에 판단을 하는 바람에 거의 담당 심사장의 의견에 따라 결정된다. 공정성을 상실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산재업무를 하다 보면 일하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이런 대우까지 당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많이 든다. 노무사로서 일을 하다 보면 대개가 억울한 사연을 가진 노동자들과 만난다. 그들은 억울한 사연을 어디에도 속 시원히 하소연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무사는 노동법률전문가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의뢰인 편에 서 있는 가장 가까운 동지라고 생각한다. 산재노동자가 당연히 가지는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게 하는 것, 관계기관이나 회사가 산재노동자를 보험사기꾼·수혜자로 왜곡하지 않고 정당한 권리자로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들이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게 하는 것이 내 일인 것이다. 아무쪼록 산재보험의 목적에 맞춰 산재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도록 하는 제도개선뿐만 아니라 마인드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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