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노동계가 우리금융과 산은금융 간 합병 등 메가뱅크(초대형은행)에 반대하고 나선 가운데 각 사업장 노조들은 예상되는 인수합병 시나리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은행 간 인수합병 짝짓기 결과에 따라 사업장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메가뱅크에 반발하면서도 예상 시나리오에 따라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23일 금융노조 등에 따르면 각 사업장 노조가 메가뱅크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구조조정에 대한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금융노조의 ‘메가뱅크 저지 공동투쟁본부’에 참여하고 있는 지부들은 대부분 인수합병의 경험을 갖고 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한 KB국민은행지부, 한일·상업은행이 합친 한빛은행에 평화은행까지 합병한 우리은행지부,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합쳐진 신한은행지부 등이 그렇다. 합병 당시 대규모 구조조정은 물론 합병 뒤에도 각 은행 출신 간 내부 갈등과 시스템 충돌에 시달려 온 이들 지부 입장에서는 다른 은행과의 인수합병은 생각하기도 싫은 그림이다. KB국민은행지부 관계자는 “2001년 합병한 뒤 10년이 됐는데도 부작용이 그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임직원 2천300여명 규모의 산업은행지부는 1만9천명이나 되는 우리은행과 합병할 경우 인재 방출과 조직문화 실종 등을 우려하고 있다. 지부 관계자는 “우리은행과 합쳐 시중은행화되고 조직정체성이 사라지면 인재들이 계속 남아 있겠냐”고 반문했다.

우리금융 민영화의 가장 유력한 결과로 예상되는 우리금융과 산은금융의 합병이 무산되더라도 노동계 고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은행의 경우 산은이 아닌 KB금융이나 신한금융과 짝이 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산업은행과는 점포가 거의 겹치지 않지만 다른 KB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과는 수백 개가 중복된다. 구조조정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이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외환은행 인수에 실패한 하나금융이 우리금융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외환은행지부 입장에서는 하나금융보다는 산은금융에 회사가 매각되는 것이 고용보장 등의 면에서 더 유리하다. 실제 지난해까지 외환은행 사측과 외환은행지부는 산은으로의 매각에 찬성했다. 노동계 내에서 “각 사업장에 따라 곰을 피하려다가 호랑이를 만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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