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169명·정직 407명·감봉 366명·견책 9천405명·경고 1천241명. 지난해 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징계자수다. 모두 1만1천588명이다. 혹시 2010년 대한민국 전체 노동자의 징계자수라면 모를까, 1만명을 넘는 징계자가 한 사업장에서 생겼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이다. 노동3권이 헌법상의 권리로 보장돼 있는 대한민국에서 노동자가 파업에 참가했다고 한 사업장에서 169명의 노동자가 해고당하고 1만1천588의 노동자가 징계를 받았다.

징계는 2009년 철도노조의 파업에 참가한 모든 조합원들에게 내려졌다. 그렇다면 철도노조의 파업은 불법파업이었나. 철도노조는 2008년에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2009년으로 이월한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노력했으나 교섭을 진행하면 할수록 벽에 부딪혔다. 철도공사는 170여개 조항 중 100여개가 넘는 단체협약 조항을 개악하는 요구안을 제시했고, 사장은 을지훈련 기간이나 사옥이전 등 온갖 핑계로 교섭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철도노조는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투쟁과 파업을 했지만 철도공사에게 ‘성실교섭’을 촉구하면서 파업에 돌입한 것은 2009년이 처음이었다. 철도노조의 경고파업에도 불구하고 철도공사의 교섭해태는 2009년 내내 되풀이됐다.

교섭에 난항을 거듭하다가 철도노조의 11·26 전면파업(2009년 11월26일) 일정을 앞두고 대전에서 3차례의 집중교섭이 진행됐으나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다만 이후 교섭에 대해서는 간사들이 협의해서 일정을 잡자고 했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노조의 집중교섭팀이 상경하는 도중에 팩스로 단체협약 해지를 통지했다. 철도노조로서는 더 이상 교섭만으로는 단체협약의 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일정대로 11월26일 파업에 돌입했다. 이렇게 돌입한 파업 때문에 1만1천588명이 징계를 받은 것이다.

2009년 일련의 철도파업이 성실교섭 촉구와 임·단협 체결을 목적으로 했고, 충남지방노동위원회 역시 같은해 9월8일 경고파업 관련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사건에 대해 정당한 쟁의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정당한 쟁의행위를 침해하는 대체기관사 투입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정을 내렸다. 충남지노위의 필수유지업무결정문에 따라 노조는 파업 전에 공사와 협의해 필수유지업무대상자를 확정했고, 파업기간 중에 필수유지업무결정을 성실히 지켰기 때문에 철도노동자 당사자는 물론이고 법률가단체·시민단체·야4당까지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파업 경과가 이러했기에 국무총리·국토해부양부장관뿐만 아니라 검찰과 경찰도 철도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역을 방문해서 “타협하지 말라”고 한마디 하자 어느새 철도파업은 불법으로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경찰에서는 파업 중인 지도부에 경찰출석을 요구했다. 김기태 위원장 등 지도부는 파업 중이기 때문에 파업 이후에 출석하겠다고 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검찰은 바로 체포영장을 신청하고 법원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또한 5개 부처 장관들은 갑자기 담화문을 통해 철도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했다. 철도노조의 합법파업이 하루아침에 불법파업으로 바뀐 것이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모든 질실이 부정된 셈이다.

철도노동자들은 합법파업이 갑자기 불법파업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노동자들의 구제기관인 노동위원회에 가면 부당징계 판정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해고자 61명을 포함해 273명만 부당해고 및 부당징계로 인정받았다. 1만1천588명 중에서 고작 273명이다. 철도노동자들은 철도공사의 부당징계에 한 번, 노동위원회의 판정에 다시 한 번 분노를 삼켜야 했다. 이제 철도노동자들은 법원의 판결도 노동위의 판정도 믿지 않는다. 물론 철도노동자들은 법원이나 노동위의 ‘불법’ 판단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철도노동자들은 여전히 철도파업의 정당성을 확신하고 있고 반드시 철도노동자의 정당성을 입증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철도노동자들의 소망처럼 하루빨리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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