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장애인 고용의 불모지였습니다. 90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설립 초기에 장애인 고용률은 0.43%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발표된 장애인 고용률은 2.24%입니다. 약 5배가 증가했죠. 장애인 노동자도 20여년 전 1만명을 밑돌았는데 올해는 12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장애인고용이 공단과 함께 꾸준히 증가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장애인 고용의 양적 확대를 넘어 질적 성장으로 도약할 때입니다.”
지난 13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만난 이성규(50·사진) 이사장은 “장애인 고용률은 한동안 답보상태에 머물 것”이라며 “앞으로는 일자리의 질을 따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해 공단 이사장이 두 번이나 바뀌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공단이 그동안 장애인계의 입장을 정책 수요에 미리 반영하지 못했다. 동반자적 인식도 부족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장애인계와 파트너십보다는 경쟁적 관계로 대치했다. 공단·정부에 대한 장애인계의 불신이 지난해 이사장 임명 파행사태로 이어졌다고 본다."

- 장애인계와의 소통 문제가 해결됐나.
"한동안 중단됐던 장애인 유관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공단 사업설명회를 이번에 부활시켰다. 장애인단체 실무책임자와의 간담회도 정례화하기로 했다. 장애인 고용 관련 주요 정책에 대해 장애인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면서 공단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90년 공단 설립 과정에 참여했고, 99년까지 공단에서 실무국장을 맡은 이력이 있다. 공단이 친정이나 마찬가지인데, 10여년 만에 기관장으로 다시 돌아오니 어떤가.
"공단은 장애인 고용의 길을 만들어 온 기관이다. 90년 공단이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장애인고용의 불모지와 같은 곳이었다. 장애인 고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낮았다. 대기업들을 쫓아다니며 장애인을 고용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일이었다. 그때 굴지의 대기업인 S그룹을 찾아가 장애인 특별공채를 성사시켰는데 당시 채용된 장애인이 지금은 간부직까지 올라가 있다. 공단 직원들과 장애인들이 구분 없이 서로 눈물과 웃음을 공유하면서 살았던 때였다. 그리고 공단 설립 당시에 장애인 고용률이 0.43%였는데 올해는 2.24%로 5배 증가했다. 장애인 노동자도 20여년 전 1만명이 채 안 됐는데 이제는 12만명이 넘는다. 20년간 꾸준히 성장했다.
물론 장애인 고용 현실은 여전히 어렵다. 우리나라에는 250만명의 등록 장애인이 있다. 장애인 실업률은 비장애인보다 두 배 이상 높다. 중증장애인의 경우는 더 높다. 장애인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장애인 고용의 양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양질의 일자리를 따져야 할 때다. 중증장애인 고용 확대를 통해 질적으로 도약해야 할 시점이다."

- 장애인 고용이 질적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 1월3일 이사장 임명장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취임 5개월이 돼 간다. 그간 지방조직을 순회하면서 현장의 어려움을 파악했다. 구체적인 비전과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4개월간 준비단계에 있었다면 이제 공단이 지향하고 있는 비전을 구체화하고 가시화할 생각이다."

-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중증장애인 고용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는데. 중증장애인 고용 문제를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최근 장애인 고용여건이 상당히 개선됐다. 경증장애인의 경우 기업들이 선호해 취업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도 중증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중증장애인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경증장애인 취업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중증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고용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이유다."

- 중증장애인 고용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다.
"지난해부터 '중증장애인 고용 2배수 인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중증장애인을 고용하면 장애인 2명을 고용하는 것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이나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등의 사업이 중증장애인 일자리 마련을 위한 좋은 방안 중 하나다. 이 밖에도 공직 진출을 희망하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공무원 특별채용도 지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중증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직업영역과 직무개발이다. 지적·자폐 등 중증장애인의 경우 기존 일자리 취업은 어렵더라도 장애의 특성을 고려하고 유연한 자세로 접근하면 충분히 새로운 영역의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중증장애인 취업을 위해 사업장의 고용환경과 직무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각종 시설이나 보조공학기를 지원하며, 직무지도원·근로지원인 등 전문인력을 적절히 지원한다면 장애로 인해 불가능한 직업영역은 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지적·자폐를 가진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새로운 직업영역이 개발돼 현재 국회를 비롯해 도서관·병원·방송국 등 다양한 일터에서 일하고 있다."

- 민간기업 장애인 의무고용률은 2.3%다. 하지만 실제 고용률은 평균 2.19%에 그치고 있다. 1천명 이상 사업장은 1.78%에 불과하다. 대기업일수록 장애인 고용에 인색하다. 장애인 고용에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인가.
"제도보다는 사회적 인식이 문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들의 능력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시혜적인 시선이 팽배하다. 이런 편견이 장애인 취업의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떤 기업은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장애인 고용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부담금은 의무 미이행에 대한 벌과금 성격이지, 선택사항이 아니다. 법에서 의무로 규정한 것은 장애인 고용이라는 점점 똑똑히 알아야 한다. 장애인 고용은 법적 의무사항으로 이행하기보다는 기업의 사회공헌이나 사회적 책임의 한 축으로 접근해야 한다."

- 올해 9월 서울에서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가 열리는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는 81년 유엔에서 정한 세계장애인의 해를 기념해 제1회 대회가 열렸다. 이후 4년마다 한 번씩 열리고 있다. 올해가 8회째다. 서울대회는 50개국 1천500여명이 40개 직종의 기능경기에 참가한다. 우리나라는 이번에 5연패에 도전하는 장애인 기능강국이다. 이번 대회가 장애인 능력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이성규 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은?
"대학 다닐 때 이념서클 활동을 했던 것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스스로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대학정립단이라고 주로 정립회관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장애인단체였는데 여기서 이화여대 약학대 다니던 친구를 만났어요. 그 친구가 어느 날 빨간 반바지를 입고 왔는데 브레이스(신체 외부에 착용해 신체의 움직임을 유지하고 지탱해 주는 장치. 영화 ‘포레스트검프’에서 검프가 어린 시절 다리에 차고 있었던 교정장치를 떠올리면 된다)를 철컥철컥하면서 다리를 꼬고 기타를 치는데 어찌나 섹시하던지…."
이성규 이사장은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았다. 지금도 다리가 불편한 지체 장애인이다. 그 역시 어린 시절 장애로 인해 심한 내적갈등을 겪었다. 장애를 감추기 급급한 그때, 장애를 드러내고 누구보다 당당했던 친구들 속에서 그런 응어리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됐다고 한다.
“남을 원망하지 않고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이사장은 84년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과 영국 런던 정경대LSE대학원에서 행정학과 사회복지정책학을 전공했다. 이후 90년부터 99년까지 장애인고용공단에 적을 뒀다. 97~98년에는 대통령비서실 사회복지수석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공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지냈고, 현재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8년부터 대통령실 사회정책자문위원을, 지난해부터 국무총리실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위원을 겸임하고 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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