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희망퇴직자·무급휴직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쌍용차 투쟁이 잊혀지는 게 가장 두려웠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 기억이 되살아날까 서로 만나는 것조차 피해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처음으로 웃었다. 투쟁 후 2년 만이었다. 문신 같던 투쟁조끼 대신 분홍색·하늘색 티셔츠 등의 옷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따뜻한 연대인’ 방송인 김제동(37)씨가 함께 웃자고 놀러 왔기 때문이다.

"자꾸 저에게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데 거창한 건 잘 몰아요. 다만 저에겐 ‘사람들이 함께 살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어요. 함께 살려면 제 옆 사람이 행복해야 하잖아요.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가 행복해야 하듯 여러분이 행복해야 저도 행복합니다. 제가 행복해지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왔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집에 혼자 있어 봐야 외롭잖아요. 같이 밥 먹고 싶어서 차 타고 왔어요.(웃음)"

지난 14일 오후 경기도 평택대학교 음악당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김씨는 이날 ‘함께 살자’라는 제목의 토크콘서트를 열고 "웃음은 혁명과 같다"고 역설했다. 현장에는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 150여명을 비롯한 사회 각계 인사 400여명이 참여해 웃음꽃을 피웠다. 토크쇼는 무료였다.

"웃음(유머)은 혁명과 동일어입니다. 혁명이 꼭 거창하고 무거워야 하나요? 우리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길 때 웃잖아요. 세상에서 좀 떨어져서 뒤집어 보는 거죠. 아이들처럼 발상의 전환을 하는 거예요. 속담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호랑이가 죽어서' 다음에 뭐냐고 물었더니 '안 됐다'고 해요. 사람이나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과 이름을 남기면 뭐합니까? 살아서 뛰어야죠. 또 '사촌이 땅을 사면' 다음에 뭐냐고 물으면 '가 본다'라고 하죠. 일단 가 보고 나서 배가 아플지 말지 결정하자는 거죠. 쌍용차나 4대강 어떻게 되고 있는지 가 보고 결정하는 거죠. 창 밖에 앉아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속담 등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소한 웃음거리를 온몸으로 전하는 김씨를 보며 사람들은 울다가 웃었다. 김씨는 투쟁도 웃으면서 하자고 했다.

“복직됐냐고 쌍용차에 찾아가 계속 묻는 거예요. 열 번에 세 번 정도는 가볍게 봄비처럼 해 봐요. 아직 안 됐다고 하면 ‘십팔색 조카 크레파스’라고 해학적인 욕도 하고 웃으면서 투쟁해요. 전 얼굴에 콤플렉스가 정말 심했어요. 특히 비행기를 타면 (눈 뜨고) 영화를 보고 있는데 승무원이 계속 담요를 덮어요. 장동건씨와 술을 먹다 너무 화가나 어머니에게 따졌더니, 어머니도 ‘나도 너 낳고 많이 놀랐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지금은 제 얼굴을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함께 살려면 함께 놀아야”

김씨가 자신의 콤플렉스와 함께 전한 쌍용차 복직 투쟁얘기에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간 평택에서는 쌍용차라는 단어가 금기어였다. 쌍용차 사태에서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심리치료를 맡고 있는 정혜신(47·마인드 프리즘 대표) 정신과 전문의가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정씨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도망치지 말고 함께 만나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씨는 “쌍용차 단어를 문자로만 봐도 두려워서 이런 자리에 못 나오는 것 잘 안다”며 “그 기억을 지우기 위해 사력을 다해 애쓰지만 밖으로 털어놓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아이들에게 분노가 전달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고베 대지진으로 절망감으로 죽는 사람이 많아 일본에서 역학조사를 해 보니 방제여건보다 지역사회 공동체가 살아서 관계가 작동되는 곳에서 생존율이 높았어요. 기억을 지우고 싶은 심정은 이해하지만, 모여서 얼굴을 맞대고 함께 놀아야 여러분이 등 뒤에 새겨 놓은 문신처럼 정말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정씨의 말에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정씨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오빠생각’·‘메기의 추억’ 등을 함께 부르며 서로를 위로했다.
다시 무대에 오른 김제동씨는 ‘함께 웃자’를 추가하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KBS와의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전하며, 세 잎 클로버(행복)를 밟지 말자고 호소했다.

“대상을 탄 KBS에서 요즘 절 안 부르는데, KBS도 사실 제가 안 나가는 겁니다. KBS 사장도 제가 잠시 잘랐습니다. 여러분도 잠시 그쪽(쌍용차)을 잘라 놓은 상태죠? 다시 이으면 돼요. ‘행운’인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행복'인 세 잎 클로버를 밟지 않았으면 해요. 세상과 조금 떨어져 뒤집어 보면서 바로 지금 행복하게 살아요. 웃음이 필요할 때 또 오겠습니다.”

이날은 정혜신 전문의가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을 상대로 진행한 8주간의 집단심리치유가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13명이 치료를 받았고, 앞으로 2차 프로그램을 이어 갈 예정이다.



쌍용차 사태 치유 위한 연대 확산”

상담을 끝낸 쌍용차 해고자 ㅅ아무개(35)씨는 이날 투쟁 후 처음으로 조끼 대신 분홍색 반팔티를 입었다. ㅅ씨는 "심리치유로 인해 달라진 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며 "김제동씨 등 사회 각계각층이 함께해 주는 것도 고맙고, 이로 인해 우리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정작 가해자는 정부와 사측인데, 그간 같은 피해자끼리 동료 혹은 가정에서 가해자를 찾아 서로에게 분노하며 상처를 줬더라고요. 심리치유를 받아 보니 이제야 내가 아팠다는 게 보여요. 또 심리치유를 받지 않은 형들을 보면 전에는 몰랐던 그들의 상처와 불안이 보여요. 더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황인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투쟁 후 가족과 한자리에 모여 편하게 웃어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오늘 행사를 계기로 가족과 모여 밥 먹고 웃을 수 있는 편안한 자리를 지부 차원에서 정기적으로 마련해 일상적으로 행복해지는 방안을 고민해야 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삼성전자 해고자 박종태씨와 기륭전자·재능교육 등 다른 사업장의 해고 노동자들도 함께했다. 그 밖에 이계안 전 민주당 의원·김용한 전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위원장·공계진 금속노조 정책연구원장 등 사회 각계 인사들도 평택을 찾았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너무 오랫동안 홀로 상처를 받게 해 죄송하다”며 “기업이 공동체의 한 주체로서 노동자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정치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김선기 평택시장은 “미흡하지만 쌍용차 해고자 가정의 아이들을 돕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는 일에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을 돕기 위한 각계각층의 연대가 확산되고 있다. 다음달에는 KBS 아나운서들이 쌍용차 가족들을 위한 스타골든벨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평택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는 쌍용차 해고자와 가족을 위한 기금 모금운동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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