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약은 수년간 노사가 협상을 통해 쌓아올린 성과다. 노·사 간 신사협정이자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 행사의 결과물이다. 이런 단체협약이 최근 휴지 조각보다 못한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그것도 정부와 사용자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사용자측은 단체협약 일방 해지권을 남용하고 있다. 두 가지 모두 장기 노사분규의 원인이 되고 있다.

문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근거해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행해진다는 점이다. 노조법 제31조3항에 따르면 행정관청은 단체협약 중 위법한 내용이 있는 경우에는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그 시정을 명할 수 있다. 또 노조법 제32조3항(단체협약 유효기간)의 단서조항에는 노사 당사자 일방이 6개월 이전에 상대방에게 통보할 경우 종전의 단체협약을 해지할 수 있다. 단,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경과한 후부터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단체협약 시정명령은 가파르게 늘어났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에 따르면 노동부의 단체협약 시정명령은 2007년 4건, 2008년에는 3건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2009년 35건, 2010년에는 46건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2009년의 시정명령 표적은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였다. 공무원과 교사들이 가입한 노조의 단체협약에 근무조건과 관련없는 사항이 포함됐다는 이유였다. 기능직과 일반공무원의 차별금지 및 시정·고위공무원의 업무추진비 내역 공개·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 등이 시정명령을 받은 단체협약 조항이다. 이 같은 시정명령에 거부했다는 이유로 손영태 전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은 지난 2009년 노조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국가형벌권이 발동된 첫 사례였다.

2010년의 시정명령은 주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위반에 대한 것이다. 지난해 타임오프 한도위반과 관련해 노동부의 단체협약 시정명령은 30개 사업장에 내려졌다. 노동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노동부가 자율시정을 권고한 곳을 포함하면 모두 118곳이다. 100여 곳이 넘는 단위 사업장 노사관계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개입한 셈이다.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사용자측이 주도한 단체협약 일방 해지추세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단체협약 일방 해지는 공공기관이 주도했는데, 민간기관으로 번지는 양상이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올해 4월 현재 산하 분규사업장 113곳 가운데 66곳이 사용자측의 단체협약 일방 해지 또는 단체교섭 회피로 쟁의행위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단체협약 시정명령으로 인한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다. 노사가 숱한 밤을 새우고 설전을 거쳐 만든 단체협약은 무용지물이 됐다. 공무원노조와 전교조의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명령은 정치적 목적이 포함됐다는 지적이 일었다. 이전 정권에서도 문제가 되지 않은 조항을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타임오프에 대한 시정명령도 논란이 일긴 마찬가지다. 행정기관이 설정한 기준에 불과한 타임오프 한도를 기준으로 단체협약의 효력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에 보장된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굳이 정부가 억지를 부리지 않더라도 노사 스스로 단체협약을 시정하거나 무효·취소할 수 있다. 단체협약 시정명령권 자체가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이러니 법원조차 노동부의 단체협약 시정명령 남용에 제동을 건 것이 아닌가. 인천지법은 지난 10일 금속노조 한국펠저지회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을 대상으로 제기한 단체협약 시정명령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최근 부산지법은 단체협약 시정명령 처벌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냈다. 비록 단체협약 시정명령에 대한 위헌성을 따지지 않았지만 시정명령 거부를 이유로 사법처리하는 것은 과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정부가 시정명령을 남용하니 사용자도 단체협약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다. 단체협약 일방해지는 무단협 상태를 불러오고, 노조가 반발하면 사용자는 직장폐쇄로 응수한다. 노조는 와해되거나 무력화되는 수순을 밟기 일쑤다. 이러니 노조의 극한 반발을 불러오는 것 아닌가.

정부부터 단체협약 시정명령을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그야말로 노사자치주의를 존중하라는 얘기다. 단체협약 시정명령은 최소한으로 그치거나 실효성이 없는 만큼 법을 손질해야 한다. 그래야만 불필요한 노사갈등을 줄일 수 있다. 정부의 태도가 바뀌면 사용자측의 공격적 노무관리 풍토도 변한다. 그래야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단체협약 해지권을 활용하는 관행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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