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근로자’란 말의 난해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근로자’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노동법의 전문영역으로 들어오면 근로자란 세 글자의 의미를 명확하게 규명하는 작업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노동법을 수십년간 연구해 온 법학자는 물론이고, 법을 해석하는 법관이나 공인노무사를 불문하고 근로자란 말을 둘러싼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근로자성 인정여부는 노동법의 보호 대상범위를 확정하며, 법적 당사자들의 천당과 지옥을 가름하는 변수로 작용한다. 일종의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게임이다. 지난 2005년부터 거의 6년간 지루한 법정 다툼을 거쳐 이번에 나온 법원 판결은 근로자란 용어의 난해성을 보여준다.

본 판결이 주목받는 이유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주목되는 대목은 헌법과 노동관계법상 단결권의 주체인 ‘근로자’의 범위를 과거보다 좀 더 확대한 점이다.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근로자’의 범위에 취업이 확실시되는 근로자를 포함시켰다. 물론 대법원이 그 동안 고수해 온 근로자에 대한 개념을 뜯어 고친 것은 아니다. ‘근로자는 특정한 사용자(회사 또는 사업주)에게 고용돼 현실적으로 취업하고 있는 자’라는 원칙론을 강조하면서도, 하지만 향후 취업이 확실시되는 자라면 노동을 공급하는 취업자가 아니더라도 노조를 결성할 법적 권리를 가졌다고 판시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 함) 제2조1호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근로자에 취업이 확실시되는 자를 포함시켜 이들의 단결권을 신장시킨 것이다.

사건의 개요 및 경과

본 사건은 영일만신항 항운노동조합이 2005년 8월 경북 포항시 신항만 건설공사 착공 직후 50명 항만노동자들을 규합해 설립총회를 갖고 조합을 발족했으나, 조합 설립신고서를 접수하는 포항시가 ‘이들 노동자는 노조법상 근로자가 아니다’며 설립신고서를 수리하지 않는데서 비롯됐다. 조합은 소송을 제기했으나 1심(지방법원)은 ‘특정한 사업자에 고용돼 있어야 근로자’란 논지로 조합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2심(고등법원)은 ‘지역별·업종별 노조인 항만노조는 달리 봐야 한다’며 취업이 확실시되는 노동자는 노조법상 근로자라며 노조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도 같은 취지로 노조(원고)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 요지

대법원은 노조법상 ‘근로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특정한 사용자에게 고용돼 현실적으로 취업하고 있는 자에 한정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본 사안의 항만 내 노동자도 현실적으로 취업하고 있는 자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항만 하역관련 사업장이 아직 현실적으로 설립되지 않았어도 통상 단계적 준공절차를 거치는 항만공사의 특성에 비춰볼 때 항만의 준공예정일 이전이라도 원고(노동조합) 조합원에 의한 노무공급이 이루어질 가능성 자체를 부정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항만 건설공사가 이미 착공돼 준공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설립되는 경우 조합원들의 취업은 단지 그 시기를 특정할 수 없을 뿐 취업 자체는 확실시돼 항만에서 조합원들에 의한 노무공급은 당연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시했다. 이런 논지로 본 사건 조합원들은 일반적 의미의 단순한 실업자 또는 구직자로 노조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는 자와 구별된다는 설시했다. 즉, 원고 조합원은 노조법상 ‘근로자’라고 판결한 것이다.

근로기준법 및 노조법상 근로자 인정범위

개별적 근로관계를 규율하는 근로기준법(이하 ‘근기법’이라 함)과 집단적 노사관계를 규정하는 노조법은 그 목적과 입법취지를 달리한다. 즉, 근로기준법은 국가의 관리·감독권을 통한 최저 근로조건 보장을 목적으로 하나, 노조법은 노동3권 보장을 통한 근로조건의 개선·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이유로 근기법과 노조법은 근로자의 인정범위를 달리한다. 근기법상 근로자는 사업이나 사업장에 현실적으로 취업해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의미하지만, 노조법상의 근로자는 현실적으로 취업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노동의사를 가진 자를 의미한다고 봐야 하며, 이번 판결은 이런 점을 인정한 것이다. 요약하면 근기법상 근로자는 사용자에 대한 인적 종속성을 중시한다면, 노조법상 근로자는 경제적 종속성을 중시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판례의 근로자성 판단 경향에 대한 검토

대법원은 노조법상 근로자를 “타인과의 사용종속관계 하에서 노무에 종사하고 그 대가로 임금 등을 받아 생활하는 자”로 정의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경제적종속성뿐 아니라 인적종속성을 갖춘 사용종속관계를 요건으로 한다(대법원 1993.5.25. 선고 90누1731판결; 대법원 2006.5.11. 선고 2005다20910판결)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런 대법원 판결은 근기법과 노조법이 그 목적과 입법취지를 달리 한다는 점에서 노조법의 근로자를 판단함에 있어 근기법상 근로자 판단기준을 너무 원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근기법상 근로자와 노조법상 근로자가 서로 다르다고 판시한 판례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 ‘구직중인 여성노동자’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보아 사용종속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판례(대법원 2004.2.27. 선고 2001두8568판결)를 들 수 있다. 이 판결에 따르면 근기법과 노조법은 입법목적에 따라 근로자의 개념을 상이하게 정의하고 있는 점, 원래부터 일정한 사용자에 종속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산업별·직종별·지역별 노동조합의 경우까지 단위 사업장의 근로자 개념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노조법에서 말하는 근로자란 특정한 사용자에게 고용돼 현실적으로 취업하고 있는 자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실업상태에 있는 자나 구직중인 자도 노동3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는 한 근로자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본 사건 대상판결도 이런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겠다.

마치며

근기법과 노조법상의 근로자는 법 문구뿐 아니라 법의 목적상 적용대상 범위도 달리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 동안 판례는 근로자 개념을 근기법과 노조법을 가리지 않고 원칙적으로 동일시하려는 경향을 보여 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대상판결은 비록 항만노동자를 특별한 경우로 보아 취업이 확실시되는 항만 노동자를 노조법상 근로자로 인정함으로써 과거보다 단결권 행사 주체인 노동자 범위를 보다 확대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 하다. 그럼에도 앞으로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의 취지를 감안해 단결권을 행사할 노조법상 근로자 범위를 앞으로 더욱 확대해야 할 것이다. 특히 취업의사가 있는 실업자 또는 구직자도 단결권의 주체로 인정하는 쪽으로 판례가 더욱 진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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