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9.12.11 수 08:00
상단여백
HOME 안전과 건강 전문가 칼럼
과학수사와 산업보건김원 녹색병원·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석면팀장
  • 김원 녹색병원·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석면팀장
  • 승인 2011.05.09 05:13
  • 댓글 0

김원

녹색병원·노동환경건강

연구소 석면팀장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싸인’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드라마에서 소개되지 않았던 직업과 소재를 다뤄 적잖은 반응을 이끌어 냈다. 극 중간에는 독약을 이용한 연쇄살인사건이 긴장감 있게 전개됐다. 이때 사용된 독약 성분이 ‘안티몬’이었다. 드라마 영향으로 안티몬의 독성정보를 소개하는 글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자주 오르내렸다.

안티몬이라는 중금속의 정확한 독성정보와는 별개로 극중 연기자의 대사에 주목할 만한 대목이 있다. 바로 “인간에게 직접 독을 먹여 본 적 있나? 체질·식습관·지병을 다 고려한 정확한 치사량…. 모르지?”로 주인공을 떠보는 부분이다. 주인공 역시 법정에서 안티몬의 치사량은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고 증언해 진실을 회피했다.

독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파라셀수스(Paracelsus)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물질은 독을 갖고 있고 독을 갖지 않는 것은 없다. 다만 양이 그것을 결정한다.” 즉 물질의 독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가 ‘양’이라는 것이다. 독성이 낮더라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에 노출되면 분명히 건강에 악영향이 나타난다. 반대로 독성이 높은 물질이라도 노출량이 미미하다면 건강영향이 적을 수 있다. 문제는 건강영향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물질 양에 견줘 얼마나 많은 양에 노출됐느냐다.

이러한 관점을 반영한 것이 유해물질 노출기준이다. 노출기준은 유해물질로부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건강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준이다. 노출기준을 설정하는 철학의 배경이 다르면 노출기준 수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건강영향이 관찰되는 시점을 중심으로 노출기준을 설정하는 것과 건강영향이 전혀 관찰되지 않는 수준을 기준으로 설정하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다시 '싸인'으로 돌아가 보자. 주인공이나 피의자의 발언에서 중요한 점은 사람에 대한 건강영향이 분명히 밝혀졌느냐다. 노출기준 설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료는 사람에 대한 건강영향이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료 유형으로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이 산업현장에서 벌어진 중독사고나 오염사고 혹은 유해물질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건강영향의 차이를 밝혀 내는 광범위한 역학조사다. 그리고 동물실험의 증거가 활용된다. 노출기준은 매우 신중한 자료들을 통해 설정된다.

그럼에도 이 기준을 안전한 수준을 확보해 주는 경계선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사람마다 감수성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노출기준을 설정한 법에서 “노출기준을 안전을 가르는 선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명시한 이유다.

한편 이 같은 절차는 다양한 화학물질의 노출기준 선정을 어렵게 만드는 장벽으로 작용한다. 노출기준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기준으로 기능하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사용 또는 유통시키는 업체들은 좀 더 엄격하게 검증된 자료를 요구함으로써 노출기준 제정과 개정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유해물질의 노출기준을 만들거나 개정할 때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엄격한 과학적 사실과 사회적 수용의 경계에서 어려운 줄타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모든 사람들이 1급 발암물질로 인식하는 벤젠이나 석면 모두 오랫동안 이런 줄타기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렀던 물질들이다.

'싸인'에서 독극물 소재였던 안티몬은 산업현장에서 삼산화안티몬 형태로 자주 사용된다. 삼산화안티몬은 플라스틱 등을 제조할 때 난연제 역할을 하는 첨가물이다. 피부독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폐와 심혈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독성을 가졌다. 특히 폐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어서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 2008년 여름, 플라스틱 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서 집단으로 피부질환이 발생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직업병 발생경보를 공지한 적도 있다. 산업현장에서 삼산화안티몬의 주요 노출경로는 흡입과 접촉이다. 드라마에서 연출된 극적인 상황이 현실에서 재연될 가능성은 낮지만 노출이 누적되지 않도록 엄격하게 관리해야 함은 분명하다. 독을 결정하는 것은 ‘양’이기 때문이다.

김원 녹색병원·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석면팀장  labortoday@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원 녹색병원·노동환경건강연구소 석면팀장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