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29일 서울지하철노조가 민주노총 탈퇴를 결의했다. 문제점과 관련 언론기사에 관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먼저 탈퇴 가결의 정당성에 관한 의문이다. 규약 변경을 위한 의결정족수가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조합원의 3분의 2를 요한다는 주장도 있다. 2009년 노동부의 행정해석이 있었지만 법원의 최종적인 유권해석은 아직 없다. 탈퇴에 반대하는 측에서 낸 소송에서 판단될 것이다. 그 결과는 앞으로 교섭창구 단일화가 이대로 시행된다면 상당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대의원과 조합원 사이 탈퇴에 관한 의견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다수 대의원의 반대를 설득할 능력 부족으로 조합원들에게 직접 의견을 물었다면 이는 민주적 노조 운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엄연히 조합원 직접선거에서 선출된 대의기구가 존재함에도 사사건건 직접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조합원들에게 의견을 묻는 통치방식은 그다지 동의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우리는 이런 방식의 국민투표를 자주해 오지 않았던가.

지난주는 서울지하철노조의 탈퇴 결의를 제3 노총과 연관 짓는 뉴스가 줄을 이었다. 이미 제3 노총이 결성된 것처럼 보수언론은 호들갑을 떨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사실과 의견의 구분이 모호한 기사가 넘쳤다. 일부 노동법 비전문 학자들도 이들 언론과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재보궐선거 패배와 102주년 세계노동절에서 양대 노총이 보여 준 실력에 보수언론도 당황했던 모양이다.

민주노총 탈퇴에 관한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들의 결의는 있는 그대로 보도돼야 한다. “10%에 불과한 기득권층이 더 많은 것을 달라고 요구하면 국민들로부터 거리만 멀어질 뿐이다. 기존 노동운동은 한계에 봉착했다.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회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는 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필자도 그와 같은 방향으로 노조가 발전하기를 기원한다.

문제는 여기에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한 덧칠이다. 예를 들어 결의사항 중 이른바 ‘제3 노총’이나 ‘국민노총’으로 가입한다는 조건이 없다면 이와 관련된 보도는 억측이거나 추측일 뿐이다. 언론이 가장 경계해야 할 왜곡 보도일 수 있다. 사실은 분명하다. 아직까지 제3 노총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국을 단위로 하는 산업별연맹단체나 산업별단위노조를 회원으로 두고 있는 총연맹은 아직까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뿐이다.

그럼에도 제3 노총 가입이 확정된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거기에 다른 의도를 의심케 한다. 혹 세간의 의심처럼 우호세력으로부터의 조종이 있지는 않는지 하는 것들이다. 이것이야말로 탈퇴에 동의한 조합원들의 순수함을 왜곡하는 것이다. 참고로 총연맹은 법률상 요건을 갖춰야 설립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언론에 오르내리는 십수 개의 단위노조만으로 노조법상 총연맹 요건을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위노조 설립조차도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는 현행 제도를 감안하면 총연맹 설립신고가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행정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로 양대 노총이 곧 사라질 것처럼 주장하는 글을 보면 허탈하다. 그간 노동운동을 싸잡아 폄하하는 내용이 다수다. 대립과 갈등, 이념투쟁, 도덕성·투명성·전문성 항목 등에 있어 모두 낙제로 보는 듯하다. 오랜 역사에서 자기 정화를 이루지 못한 일부 사례가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모두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일부 사례가 있다곤 하지만 이들의 평가는 이른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그리고 가장 아쉬운 점은 이들의 평가에는 노동운동을 향한 따뜻함이 없다는 점이다. 양대 노총의 운동을 대립과 갈등으로 폄하하고, 시장 참여형의 제3 노총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만 같다. 이 같은 느낌이 잘못된 것이길 바란다. 이들의 다른 사회 주체에 대한 태도가 그 잣대일 것이다.

물론 냉철하고 따뜻한 비판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민주화시대를 넘어선 운동방향 제시에 관한 것들 말이다. 비정규직 등 소외계층을 위한 자기희생은 아직도 시작이라고 하기에도 미미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제3 노총의 배후는 분명해진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