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이은 제일저축은행 대출비리 사태로 금융계가 들썩이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에 놀란 예금자들은 제일저축은행 역시 대출 비리로 수사를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앞 다퉈 예금을 인출하고 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금융감독원을 방문해 이들 은행에 대한 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관리들을 크게 질책하는가 하면 검찰은 "제일은행 대출비리는 일부 전직 임원들만의 비리"라며 사태를 축소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당국의 관리가 소홀하다 하더라도 자산규모 4조원의 부산저축은행이 어떻게 자기자산보다도 많은 4조5천억원 규모로 불법대출을 할 수 있었을까. 또한 아무리 대출심사를 막무가내로 한다고 해도 어떻게 5천억원을 떼일 정도로 무담보 대출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리 회계를 엉망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외부회계감사 이름으로 버젓이 공시한 재무제표에서 분식회계 규모가 2조4천억원이나 될 수 있었을까.

사실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같이 막가파 식 비리가 저질러진 데는 금융당국의 실수(혹은 공모?)도 있었겠지만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이후 변화된 은행 형태가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는 한 건의 비리 에피소드가 아니라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구조적 부패비리라는 것이다.

잠시만 살펴보자. 먼저 4조5천억원 규모 불법대출에 이용된 특수목적법인(SPC)은 기업의 인수합병 혹은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 여러 투자자들이 임시로 세우는 회사인데, 여러 투자자들이 투자사업 이후 자신의 몫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투자자의 신분이나 기업의 부실을 은닉할 때도 이용된다. 금융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던 90년대 후반 이후 많이 이용됐다. 이러한 은닉을 위해 설립된 가장 유명한 특수목적법인은 2001년 엔론이 세운 특수목적법인들로,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이었던 엔론은 이들을 통해 알 수 없는 다양한 금융투자와 부실자산 관리를 해 왔고 이들 기업들이 역사상 가장 큰 분식회계가 가능할 수 있도록 역할했다. 이번 부산저축은행 불법대출에 동원된 120여개의 특수목적법인도 기본적으로 이와 비슷했다.

다음으로 무담보 대출. 서민들에게는 아직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금융자본에게 무담보 채권은 이제 일상적인 것들이다. 금융시장이 거대해지면서, 금융시장의 자산은 실물가치에 근거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의 ‘신용’에 더 크게 의존하게 됐다. 기업들은 무담보회사채를 발행하고, 은행들은 이러한 사채를 사들이며 신용규모를 키우는 것이 일상화됐다. 문제는 이러한 거래가 일상화되면서 실제 생산된 가치와 괴리된 거품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일반 대출에도 이어져 부산저축은행처럼 막무가내 무담보 대출을 계속해도 아무도 의아해하지 않게 된다. 사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현재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분양가치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무담보 대출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다.

마지막으로 분식회계. 이번에 문제가 된 분식회계는 금융감독원 출신의 외부감사가 공모해 진행됐는데, 명백한 사기행위가 아니라 하더라도 투기성 금융자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본은 법적으로 문제는 되지 않지만 다양한 형태의 거짓 회계를 작성한다. 이러한 회계가 가능한 이유는 신자유주의 금융화 이후 금융기관이 보유한 자산 대부분이 실체를 파악하기 힘든 금융상품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2008~2009년 파산 직전까지 간 씨티은행의 예를 보자. 씨티은행은 2조달러의 자산 중 70%는 투자증권과 유가증권, 다시 말하면 씨티은행이 구매한 각종 금융투기 상품들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자산의 규모도 모호하고 이 자산으로부터 나오는 이익 역시 불명확하다는 것인데, 자산시장 상황에 따라 수십조원이 넘는 이익을 내는 듯 보이다가도 갑자기 어느날 보면 수십조원의 손실로 뒤바뀌기도 한다. 세계 1위의 은행 씨티은행은 2009년 대규모 자산상각이 이뤄지고 미국 정부로부터 3천5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쉽게 이야기하면 합법적인 분식회계를 해 왔다는 것이다. 세계 1위 은행도 이러할진대 나머지 은행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사태를 보며 지난해 개봉한 ‘인터내셔널’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의 줄거리는 세계 최고의 은행이 돈 세탁·무기 거래·테러 등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범죄에 연루돼 있고 이를 파헤치는 경찰이 은행과 연루된 마피아와 정부로부터 위협을 받는다는 것이다. 스케일은 다르지만 부산저축은행 역시 각종 검은 거래와 투기, 그리고 당연히 있을 금융당국과의 커넥션 속에서 오늘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한두 은행의 일이 아니라 금융 세계화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단순한 일회성 처벌보다는 금융화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패와 비리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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