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조직비정규실장
연쇄자살로 파문을 일으켰던 애플 하청회사 팍스콘의 중국 본토 공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이 지난 2일 모든 언론의 국제면을 비중 있게 채웠다. 주요 일간지들은 <연쇄자살 파문 ‘애플 하청’ 노동 착취·인권유린 여전>(한겨레 21면), <팍스콘 ‘자살 않겠다’ 서약 받아 물의>(경향 14면), <잘나가는 애플 때문에 … 중국공장 노동자 ‘혹사’>(한국 16면) 등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한결같이 이 공장이 주문량을 맞추려 엄청난 추가근무를 강행했다는 내용이다. 이들 기사의 작은 제목에도 이 같은 사실이 잘 나와 있다. 이들 공장 노동자의 살인적 초과근로시간은 신문마다 약간씩 달랐다. 한겨레는 월 60~80시간이라 했고,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은 월 98시간이라고 못 박았다. 정상근무를 다하고 나서 초과근로만 이 정도라면 누구라도 놀랄 일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해외토픽이라고 이런 기사를 쏟아냈지만 이런 노동자는 한국에도 지천에 깔려 있다. 중국은 아직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천210달러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2만달러다. 이런 한국의 지역공단 노동자는 아직도 대부분 월 90시간의 초과근로에 시달린다. 정작 해외토픽감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의 노동자다.

지난해 5월 서울 구로공단(서울디지털단지)의 한 전자업체 하청회사에 다니는 30대 노동자의 월급명세서에는 월 소정근로시간 외에 연장근무가 43.5시간, 특근이 48시간, 특근연장이 5시간으로 모두 합치면 96.5시간이다. 이 노동자의 기본급은 정확히 지난해 최저임금 4천110원이었다. 하루 8시간의 정상근무만 하면 정확히 한 달에 85만8천990원이다. 이 돈으로는 서울에서 생활한다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노동자는 한 달에 96.5시간의 연장근무를 하고서야 겨우 140만원 남짓한 돈을 손에 쥔다. 이런 게 800만명이 넘는 한국 사회 비정규직의 실태다. 자국의 이런 노동현실 대신 멀리 중국의 팍스콘 노동자의 사연을 집중보도하는 한국의 언론이 해외토픽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수만 명의 기자들이 몰린 대한민국 서울 하늘 아래 이런 일이 벌어지는 데도 우리 언론은 걸핏하면 무슨무슨 통계에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라는 순위 매기는 기사만 즐겨 쏟아낸다.

기자실에 죽치고 앉아 관료들의 브리핑을 듣고,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을 뒤진다고 특종이 나오는 건 아니다. 요즘처럼 따뜻한 봄날, 가산디지털단지나 반월시화공단·인천 남동공단이라도 가서 바람이나 쐬고 올 일이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60년대에나 있을 법한 장시간 노동시간에 시달리고 있는지.

나는 이런 발 냄새 나는 기사를 오랜만에 한국일보에서 봤다.(한국일보 2일자 11면) 한국일보의 한 기자는 지난 1일 새벽 6시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내려 경복궁까지 뛰어서 겨우 번호표를 받고서야 일당 3만원짜리 어가행렬의 말석에 섰다. 일당 3만원을 벌려고 1천명이 훨씬 넘는 서울시민이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유네스코 등재 10주년이 되는 종묘대제 어가행렬의 알바생으로 지원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한국일보 기자는 새벽 6시 경복궁의 분위기를 ‘인산인해’라고 했다. 기자는 1천200명을 선착순으로 뽑는데 900번대의 번호표를 겨우 받았다고 했다. 급조한 종묘대제의 어가행렬이 어떤 수준이었을지는 새벽 6시의 상황만 봐도 뻔하다.

노동자들의 새벽 행렬은 수없이 많다. 건설일용직과 청소노동자들이 모두 새벽 첫차를 타는 단골 승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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