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위선, 이렇게 말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4·27 재보선 승리 직후 민주당이 선택한 결정은 한·EU FTA를 한나라당과 합의 통과시키는 일이었다. 물론 진보정당과 시민단체, 그리고 민주당 내부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혀 회의 불참으로 사태를 피해가긴 했으나 이로써 잃어버린 야권연대 내부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대표의 임기 말 마지막 성취라고 내세우려 했던 모양이지만 모양새가 영 말이 아니게 됐다. 그의 당대표 도전에도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야권연대의 비토 대상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그의 처신은 어려워졌다. 손학규 대표의 입장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야권의 승리에는 야권연대가 기초이고 그것은 가치, 내지 정책연대가 핵심인데 그걸 파기한 것이니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당장에 중소 자영업자들의 사회안전망이 무너질 판이다. 이걸 어떻게 감당하려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마치 투표 때는 표 때문에 머리를 조아리며 굽실거리다가 상황이 달라지니 나 몰라라 하는 식이 아닌가. 이러고도 정치에 대한 신뢰를 가져 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는 것은 정치인 자신들이다.

한편에서는 그래도 민주당이 정권교체에 중요한 세력이니 민주당과의 통합을 내년 선거의 전략으로 짜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터지고 나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머쓱해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자기들의 우호적 지지 세력에게도 배신의 칼을 꼽은 격이다. 민주당이 진보적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기대하며 민주당과 다른 정당의 통합에 열정을 기울였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지 않은가.

어리석다. 그리고 타락했다. 정치적으로 어리석고, 윤리적으로 타락했다. 정치에 신뢰가 중요하고 그것은 함께하는 정치에서 대들보다. 그러나 이번 일은 민주당이 윤리적으로 얼마나 썩었는지를 보여 준다. 너무 심한 말이라고 여기는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이 또한 타락의 증거다. 윤리적 신뢰를 붕괴시킨 것에 대해 마음 아파하면서 자성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그냥 의원총회를 하고 불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민주당의 영혼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드러낸다.

저지의 의지도 없고, 그냥 말만 하다가 흩어진 민주당의 모습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본질적으로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을 먹게 한다. 기쁜가. 정작 힘겹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챙기는 일은 말만 있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면 민주당이 원하는 것은 다만 집권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그렇게 집권하고 나서 하게 될 일이 한나라당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라면 아예 한나라당과 연정을 펴는 것이 집권전략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죽은 쒀도 유분수지, 야권연대의 승리를 자축하고 나서 그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할 그 시각에 한 일이 한나라당에게 뭐가 미안해서인지 선물을 안기는 일이었단 말인가. 그래서 뭐가 돌아오는가.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이 전혀 아닌 것을 해 놓고 겉모양의 의원총회를 열어 놓고 그 뒷감당이 어려우니 불참으로 마무리짓는 것은 비겁해 보이지 않는가. 스스로도.

농민들과 중소 영세상인 자영업 등에 미치는 파급을 막을 방도는 세워 놓지 않고, 누구의 요구와 이익을 중심으로 이 협정을 통과시키도록 수수방관했는가. 의원총회에서 비판적인 발언을 했던 정치인들 역시도 불참만으로 그칠 일은 아니지 않았던가. 단신으로라도 나서 그걸 막으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그나마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질타가 돌아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몸짓이었을 텐데 이런 식이라면 실망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는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 야권연대의 축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하는지를 깊이 각성하게 한 사건이었다. 집권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틀을 갖지 못하면 민중의 삶은 계속해서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결과를 가져올 야권연대와 통합은 거부한다. 그것은 진보세력이 여전히 우려하고 있듯이, 진보의 옷을 슬쩍 입고 결국 보수우파의 기득권을 지켜 내는 세력에게 권력을 주는 일에 기여할 뿐이다.

민주당의 위선은 민주당의 자충수다. 이걸 다시 깊게 짚고 반성하고 나가지 않으면 민주당의 앞날은 어둡다. 단독 집권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진보세력을 기만하고 야권연대의 신뢰를 스스로 허물면 그것은 자기 발목을 붙잡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한나라당 세력이 계속 집권하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치고 진보세력의 힘을 결집시켜 최종적인 승리를 이루는 단계론적 전략에 들어서도 어쩔 수 없다.

그 와중에 민중들은 고통을 당할 것이며, 민주주의는 더더욱 망가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민주당에게 있게 된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시간은 없다. 이번 일에 대해 민주당은 사과해야 한다. 이 협정의 여파로 생겨날 민생의 고단한 현실에 대해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민주당은 야권연대 복구의 책임을 지고 실천으로 그 내용을 보여야 한다. 아니면, 민주당의 위선은 지속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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