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전 법리 이해 몇 가지

대상 판결(정확히 말하면 결정)은 노동법과 헌법은 물론 형법까지 아우르며 여러 가지 법리들이 얽혀있는 다소 복잡한 사안인 관계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먼저 기본적인 몇 가지 법리부터 간략히 정리해 보도록 한다.

‘노사자치주의’ :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위시한 집단적 노사관계법은 근로기준법처럼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노동자 보호의 취지를 가진 개별적 노동관계법과는 달리 국가의 개입을 최대한 배제한 노사자치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한다.

‘단체협약 시정명령제도’ : 행정관청은 노사가 합의해 체결한 단체협약 중 위법한 내용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시정을 명할 수 있다. 시정명령을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적법절차의 원칙’ : 헌법은 누구든지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처벌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형식적인 형사소송절차뿐만 아니라 형사처벌 법규의 실체적 법률내용이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과잉금지원칙’ : 헌법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만 국민의 권리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때도 권리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으며 제한 법률은 목적의 정당성·목적달성을 위한 방법의 적정성·입법으로 보호하려는 공익과 침해되는 사익간의 균형성·입법으로 인한 피해 최소성 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죄형법정주의’ : 국가형벌권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고 그 범죄에 어떤 처벌을 할 것인가를 국민이 예측 가능하게 법률로 정해 놓아야 한다는 헌법 및 형법상의 원칙이다. 죄와 벌의 내용은 명확해야 한다는 명확성의 원칙 등을 세부 원리로 갖고 있다.

2. 시정명령 위반에 대한 처벌조항은 위헌이다

노동조합과 사용자는 험난한 교섭을 거쳐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상호 존중 및 협력의 소중한 결과물인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장관은 그 단체협약 중 법률에 위반되는 내용이 있다며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무려 22개 조항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다. 시정명령은 이행되지 않았고 노조대표자들만이 검찰에 의해 기소가 돼 형사소송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이에 노조대표자들은 당해 형사재판의 전제가 되는 단체협약 시정명령제도와 관련 처벌제도가 위헌이라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법원에 신청한 것이다.

법원은 시정명령 위반에 대한 처벌제도가 ① 위법한 단체협약으로 인한 위험은 장래의 추상적인 것이라서 그 시정의무이행을 시급히 확보할 필요성이 적음에도 노사 간 충분한 교섭을 통한 시정이 아니라 시정명령 이행에만 급급해 오히려 새로운 노사분쟁이 발생할 수 있어 산업평화를 유지하려는 노조법의 입법목적에도 배치되고 ② 굳이 형사벌이 아니라 과태료 같은 행정벌 등으로도 의무이행확보가 가능하며 ③ 노동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명령 위반의 경우에도 명령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노조법의 입법태도에 비춰 균형성도 상실하고 있으며 ④ 나중에 행정소송에서 시정명령이 위법한 것으로 판단되더라도 시정명령 불이행의 죄는 일단 지게 되는 부정의한 문제점 등을 종합해볼 때 당해 제도가 적법절차의 원칙과 과잉금지의 원칙에 저촉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① 시정명령의 형식이나 내용 등에 관해 법률규정이 없고 시정명령 자체에 모두 위임하고 있어 당사자들이 예측할 수 없도록 돼 있고 ② 시정명령 위반행위가 단체협약이 시정되지 않은 결과만 의미하는지 시정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까지 포함하는 개념인지 불분명하며 ③ 단체협약 내용의 광범위함 등에 비해 시정명령을 불이행하기만 하면 일률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지나친 포괄성과 법집행기관이 처벌대상 및 대상자를 자의적으로 선별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는 법집행의 불공정성 등을 들어 당해 제도가 죄형법정주의에도 위배된다고 결정했다.

3. 문제는 단체협약 시정명령제도 자체다

법원은 그러나 ① 단체협약의 위법한 내용을 명확히 해서 선의의 피해자 발생을 방지하고 사후 위법한 내용의 교정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노사 혼란을 예방하는 취지이므로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정성이 인정되고 ②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므로 단체협약의 위법심사 과정에서 행정관청의 자의가 개입될 여지도 적으며 ③ 시정명령으로 해당 조항이 바로 효력을 상실하는 것도, 시정명령 위반 시 행정관청에 어떠한 집행력이 부여되는 것도 아니므로 단체협약체결권에 대한 제한 정도가 크다 할 수 없다며 공공복리 등의 정당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고 합리적인 제한이라고 보아 시정명령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형사처벌조항의 위헌성에 대한 상기 법원의 판단은 굳이 더 빼고 붙일 것도 없이 비교적 적정해 보이나 단체협약 시정명령제도 자체에 대한 합헌판단에는 대단히 큰 아쉬움이 남는다. 단체교섭권은 헌법상의 기본권이고 단체교섭권에는 단체협약체결권이 당연히 포함돼 있는 것인바(헌재 1998.2.27. 94헌바13) 자율적인 단체교섭을 통해 체결된 단체협약에 대해 제3자인 노동부장관에게 시정명령 권한을 주는 것은 노사자치주의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자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을 형해화시키는 것으로서 과잉금지원칙에도 위배된다.

무엇보다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해서라도 보호하고자 하는 단체협약과 관련된(위법한 단체협약으로 침해받는) 공익이 도대체 무엇인지 필자는 그 존재를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무지함과 상상력의 일천함으로 인해 필자가 알지 못하는 공익이 설령 있다하더라도 힘겨운 교섭과 분쟁을 통해 탄생한 단체협약을 없던 일로 만듦으로써 발생되는 노사관계의 극심한 혼란과 분란을 무시할 만큼 큰 가치를 지닌 사회적 이익인지도 의문스럽다.

또한 단체협약의 위법성 여부는 문제되는 조항이 구체적인 사건으로 발생되면 당사자의 구제신청이나 법원의 재판을 통해 가려지면 될 일이다. 단체협약도 계약인데 국가가 사인(私人)간의 계약내용을 바꾸라는 명령을 당사자나 이해관계인의 신청도 없이 직권으로 내린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도 합당한 일인가. 국가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나.
 
당해 제도는 과거 노조 및 노조활동 자체를 불온하게 보던 시절에 만들어진 과도한 행정관청의 부당한 노사관계개입 제도들 중 하나일 뿐이며, 현재도 당해 제도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노조 및 노조활동에 대한 국가적․법적 인식이 과거와 다를 바 없다는 반증이다.

4. 때리는 노동부 못지않게 거드는 노동위원회가 더 문제다

상기 법원 결정문에서도 노동위원회 의결 절차의 존재가 당해 제도에 대한 합헌판단의 한 이유로 판시되고 있다. 그만큼 준사법기구인 노동위원회의 의의와 올바른 판단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인데, 실상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니 더욱 안타깝고 답답한 현실이다. 사실 단체협약 시정명령제도는 노사자치주의 원리에 따라 사실상 사문화돼가던 제도였는데, 현 정부 취임 이후 화려하게 부활하더니 현재는 정부의 신종 노조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8년까지 연간 단체협약 시정명령 의결사건 수는 전체 노동위원회를 통틀어 10건도 채 되지 않았으나(2004년 3건, 2005년 5건, 2006년 9건, 2007년 5건, 2008년 3건) 2009년에 35건, 2010년에는 무려 94건으로 급증하고 있다.

대상 사례와 같이 특히 공무원 및 교원노조에 대한 단체교섭권 무력화 수단이자 소위 타임오프제도와 관련한 과도한 법집행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노사가 합의한 노조전임자 및 조합 활동 관련 단체협약들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며 시정명령이 남발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에 대해서는 고작 3%의 인정률(2010년 전체 노동위원회의 기각 및 각하 건수 대비 인정 건수 비율)을 기록하고 있는 노동위원회가 노동부의 단체협약 시정명령 의결요청에는 무려 99%의 인정률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제를 일차적인 존재 의의로 하는 노동위원회가 스스로 존립근거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자랑스레 노동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자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노동부와 노동위원회에서는 부당노동행위란 역설적이게도 노조가 교섭과 투쟁을 통해 쟁취해낸,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한 단체협약 안에만 존재하는 것이 돼 있다. 참담한 현실이다. 비록 형사처벌 조항에 한정된 위헌심판이지만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판정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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