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 경향은 사회적 원인 때문이며, 그 자체가 집단적 현상"이라고 규정했다. 우리나라는 2008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인구 10만명당 자살률 24.3명을 기록해 1등을 차지했다. 더 심각한 것은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카이스트 사태에서 보듯 20대 사망률이 1위를 차지해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자살사건의 산재인정 기준을 보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개악된 2008년 7월1일 이전과 이후에 법조문의 차이는 있지만 실무상의 차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자살사건 사고의 경우 요양치료 중인 자가 아닐 경우 기존 실무상 근로복지공단은 ‘정신과적 치료경력’을 필요적인 요건으로 구비할 것을 요구했다. 정신과 치료 전력이 없으면 산재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해 부득이하게 자살이라는 재해를 당했어도 정신과 진단서(치료경력)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산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현재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산재법 시행령 제36조제1호)로 법령이 변경됐지만, 여전히 공단은 실무상 정신과적 치료병력을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기준변경은 당초 시행규칙 제32조제1호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은 자’라는 내용이 의학적·법률적 적합성이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한 경우 업무상재해 여부 판단에 있어 제반 상황으로 자살로 이르게 된 환경 및 업무상 스트레스 인정 여부에 중심을 두어 판단할 뿐 정신과적 치료전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정기준에 포함시켜 판단하지 않은 사례”(대법원 2006. 1. 26 선고 2005두14325판결, 대법원 2007. 4. 26 선고 2007두3442 판결 참조)라고 여러 번 판시했다.

그러나 실제 자살사건과 자살미수로 인한 산재사건을 수차례 하다 보면 실무적 판정절차도 일관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단의 ‘업무상질병판정위위원회 2010년 심의현황 분석’(2011. 2) 자료를 보면 2010년 전제 질병 불승인율 63.9% 중 정신질환의 경우가 84.2%(신청 95건·불승인 80건)로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자살 사안에 대해 자문의사협의회에 상정하고, ‘정신병’ 자체에 대해서는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로 판정을 이관한다는 사실이다.

법원의 판정기준도 문제다. 대법원은 “자살은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므로 노동자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발생하였고, 그 우울증이 자살의 동기 내지 원인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곧 업무와 자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함부로 추단해서는 안 된다”며 “자살자의 나이와 성행 및 직위,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자살자에게 가한 긴장도 내지 중압감의 정도와 지속시간, 자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황과 자살자를 둘러싼 주위상황, 우울증의 발병과 자살행위의 시기 기타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기존 정신질환의 유무 및 가족력 등에 비추어 그 자살이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대법원 2008.3.13 선고 2007두2029 판결 참조)고 했다. 이는 자살이 본질적으로 고의적 행위이며 그 기준을 ‘사회 평균인’이라고 보고 있어 일반적 산재 인정에 있어 재해노동자 ‘본인 기준설’(대법원 2006. 3. 9 선고 2005두13841 판결, 대법원 1992. 5. 12 선고 91누10466 판결 참조)과 배치되고 있다. 최근 이에 반하는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0. 8. 19 선고 2010두8553 판결)이 나왔지만 기존 입장을 변경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망률 5위 안에 ‘자살’이 있고, 자살은 정신병으로 생긴 그냥 ‘병’일 뿐이다. 하지만 이를 공단과 법원이 이중으로 규제해 개별 노동자만의 문제로 규정하고 있다. 정신질환과 스트레스에 노출돼 병원 문턱조차 넘기 어려운 노동자의 현실과 뒤르켐의 말을 곱씹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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