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주년 세계노동절. 매년 맞이하는 5월1일이지만 올해는 그 느낌이 많이 달랐다.

시작은 작은 연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대 노총의 공조일 것이다. 비록 행사 장소와 지역은 달랐지만 노조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정부의 일방적이고 무책임한 노동정책을 바꾸자는 공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란의 중심에는 타임오프와 복수노조의 창구단일화 폐지다. 행사는 성공적이었다. 늘 해 오던 대로 그들만의 행사라 평하긴 어려울 정도의 규모였다. 당일 오전에는 양대 노총이 남북노동자통일대회까지 함께했다. 2007년 이후 처음이기도 하다.

다만 양대 노총의 공조가 지속되리라 확신하는 자들은 현재로선 많지 않아 보인다. 5월1일 이후 현안 해결을 위한 단순한 공조를 넘어 양대 노총이 연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무엇보다 복수노조 시행을 앞둔 양 조직 현장의 분위기에 온도차가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조직을 지키기 위해 서로에 대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요컨대 이 같은 현장의 우려는 창구단일화가 낳은 덫이다. 노조의 분열을 원하는 자들의 의도를 갈파해야 한다. “복수노조 시대를 맞아 양 조직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다”라던가 “제3노총이 뜰 것이다”라는 선전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이들은 복수노조 시행과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이 없다.

지금껏 조직 내·외 경쟁은 당연히 존재했다. 노조 내부 민주화의 당연한 과정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서로를 부정해야 하는 목숨 건 경쟁은 없었다. 현장의 불안은 사실상 과반수 노조에게만 노동3권을 인정하는 창구단일화 제도에 원인이 있다. 이 법이 그대로 시행되면 단체교섭권과 행동권 쟁탈을 위한 경쟁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제 살 깎기 식의 제도 도입을 막아 낼 기회는 아직도 충분하다. 시작은 노동계 전체의 연대여야 한다. 조직 간 경쟁의 덫에 빠지지 않고 완전한 복수노조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바로 창구단일화 폐지가 그 답이다. 최대한 빨라야 한다. 만약 개정 노조법이 시행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연대는 힘들어질 것이다.

마음을 열고 연대하려면 복수노조 시행의 진정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복수노조는 기존 조직에 대한 공격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기성 노조는 복수노조 시행을 대다수 미조직 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대전환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동안의 축적된 경험으로 90% 노동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준비하는 것이 복수노조에 대한 바른 이해다. 서로에 대한 공격만으로는 노조 조직률을 높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같은 이해가 없다면 상대방이 놓은 덫에 보기 좋게 빠져 들게 될 것이다.

더 큰 연대를 위하여

이번 노동절에서도 소외된 계층과의 연대 목소리는 높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비정규·영세·중소·이주·노인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이 곧장 실현되리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 큰 문제는 노동계에 과연 실천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심하는 자가 훨씬 많다는 데 있다.

위기의식을 갖고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진짜 연대가 절실하다. 비정규 노동자 문제가 가장 좋은 예다. 15여 년 동안 비정규 노동자가 1천500만에 육박했지만 그들을 위한 어떤 연대가 있었는지 분명한 평가가 요구된다. 구호에 그치지 않았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굳이 노동계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 상대방이 놓은 덫에 빠져 들고 있다는 반증도 된다. 능력에 따른 성과차별을 가장한 노동자 내부의 분열 조장의 덫이다. 이번 정부에서 공기업부터 시작된 대졸초임자와 상급자의 임금체계를 달리하는 것도 주요 전술 사례다.

그러한 분열책에 기존 노조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는 솔직한 고백이 필요하다. 사용자와 정부에만 그 책임을 돌리진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자연스레 노동자 사이에 깊은 골이 졌고 단결력이 약화됐지 않은가. 급기야 자신이 위협당하는 지경이다.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되돌아올 수 없는 지경으로 내몰릴 것이다.

120여 년 전부터 8시간 노동을 외쳤다. 그 동력은 노동자 연대였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부끄럽기까지 하다. 2천500만 전체 노동자와 연대할 때만 작게는 지금 누리는 대표의 지위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홍익대 청소용역노동자 사건이나 모든 것을 내놓고서라도 대졸초임자들을 지켜 준 것과 같은 예가 많아야 그들의 덫을 피할 수 있지 않겠나. 2011년 5월 1일이 그 출발선이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