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보궐 선거는 야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번 선거에서도 야권단일후보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확인됐다. 비록 김태호 당선자(한나라당)에게 경남 김해을을 넘겨줬지만 야권연대의 의미가 훼손될 정도는 아니었다. 되레 야권단일후보로 나선 김선동 당선자는 호남 최초의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라는 이름을 새겼다.

특히 울산에서 진보구청장이 배출된 점은 노동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울산 북구에 이어 동구까지 구청장이 배출돼 울산에서 진보정당은 제1 야당의 지위를 탈환했다. 울산 동구 재선거는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의 지원을 받은 여권후보와 야권단일후보인 김종훈 당선자(민주노동당) 간에 접전이 진행됐다. 울산 동구의 유권자 절반에 이르는 5만5천여명이 현대중공업그룹과 관련이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김종훈 당선자는 2위로 밀렸으나 막판 뒤집기에 성공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울산 동구의 유권자 수는 13만2천233명, 투표자는 6만2천783명(47.5%)이다. 이 가운데 김종훈 후보는 2만9천561표(47.3%)를 얻어 2만6천887표(43.02%)를 얻은 한나라당 임명숙 후보를 2천674표차로 따돌렸다. 무소속인 천기옥 후보는 3천797표(6.07%)를, 이갑용 후보는 2천249표(3.59%)를 얻었다. 반면 김종훈 당선자는 지난해 치러진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일대일로 맞붙어 낙선한 바 있다. 당시 김종훈 후보는 3만6천550표(48.66%)를 얻어, 3만8천549표(51.33%)를 얻은 정천석 한나라당 후보에 1천999표차로 석패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의 투표자는 7만6천517명으로, 4·27 재보궐선거 투표자는 이 보다 1만3천734명이 적다. 그럼에도 김종훈 당선자의 득표율은 두 번의 선거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단, 4·27 재보궐 선거에서는 지지세가 겹치는 여권성향의 후보와 진보성향의 후보가 각각 갈라져 나온 것이 영향을 줬다.

두 번의 선거에서 확인됐듯이 김종훈 후보가 지지자를 결집해 낸 비결은 무엇일까. 울산 동구의 거대사업장인 현대중공업에는 정규직 2만5천명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2만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에는 정규직 3천700여명과 사내하청 비정규직 5천600여명이 일하고 있다. 현대중공업노조와 현대미포조선노조는 일찌감치 임명숙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지지선언을 했다. 이 지역에서 내리 5선을 한 정몽준 의원은 임명숙 후보를 위해 직접 지원 유세에 나설 정도였다. 대주주인 정몽준 의원이 지원사격에 나선 만큼 현대중공업그룹도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관리자가 직접 나서 특정후보 지원에 나서는 한편 사내에서 노골적으로 지지를 강요했다. 사내하청 회사의 잔업을 지시해 투표율을 낮추려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기표를 마친 현대중공업 직원이 휴대전화로 투표용지를 촬영해 회사로 전송하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에게 적발됐다.

두 회사의 노조와 사용자측의 행태를 고려하면 김종훈 당선자가 정규직 노동자로부터 지지를 얻는 것은 제약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된 복지후생제도와 고임금에서 차별을 받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가족의 표가 김종훈 당선자에게 쏠린 것으로 해석된다. 특정후보의 지지를 강요하거나 투표율을 낮추려고 안간힘을 쓴 현대중공업그룹과 이 회사의 정규직 노조에 대한 심판의 의미도 깔려있다. 이는 당선을 확정짓고 난 후 김종훈 후보의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김 당선자는 “동구 제조업 노동자 4만5천명 중에 절반이 넘는 2만5천명이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라며 “이들의 문제를 직접 챙기는 구청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선거결과에서 보듯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투표성향은 이원화되고 있다. 양극화와 차별이 노동자의 투표성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진보정당이 울산 동구청을 5년 만에 탈환한 것을 자축만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진보진영이 지난 5년 간 울산 동구청장을 배출하지 못한 것은 양극화와 차별해소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안과 실천을 하지 못한 탓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김종훈 당선자가 구청 내에 비정규직 지원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그의 공약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고, 지역차원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는 일에 앞장서주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