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때늦은 금융부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곪았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이 도화선이 돼 연초부터 삼화저축은행을 필두로 2개월 동안 무려 8개 상호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들 저축은행들에 대해 한때 대량 예금인출 사태(뱅크런) 조짐까지 일어날 정도였으며 최근 국회 청문회를 여는 상황으로 번졌다. 영업정지 하루 전에 VIP고객에게 사전 예금인출을 했다는 의혹까지 증폭되면서 저축은행 부실이슈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저축은행 부실사태가 채 수습되기도 전에 신용카드 대출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어 금융시장은 더욱 혼란스럽다. 일부에서는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진단을 하기도 한다. 금융위기 자체는 대체로 수습되고 실물경기도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진단이 나온 지도 한참 됐다.

때늦게 저축은행과 신용카드 등 제2금융권의 부실 가능성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사실 신용카드사들의 과열경쟁이 전면화할 것이라는 전망은 지난해부터 나왔다. 특히 올해 2월 업계 2위인 국민카드가 국민은행에서 분사하겠다고 발표할 때부터 예견됐다. 이는 관련 통계를 보면 명확히 드러난다. 우선 카드 발급규모가 늘었다. 무실적 휴면카드를 제외한 신용카드는 2008년과 2009년에는 각각 500만장 정도 늘어났지만 지난해에는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900만장이 늘었다. 적극적인 신규회원 모집 경쟁이 재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발급받은 카드로 단순히 신용카드 결제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이용해 대출을 받는, 즉 카드론 사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드론은 은행 대출과 달리 전혀 복잡한 대출절차가 없다. 대신 은행 대출 금리의 최소 2배 이상인 평균 16%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 실제 지난해 카드론은 전년 대비 무려 42.3%나 늘어났다. 5년 전에 비하면 약 3배나 늘어났다. 신용카드 결제가 16.6% 늘어난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그 결과 5개 전업카드사들의 카드론 영업수익은 30%나 신장됐다. 2003년 신용카드 대란의 주범도 바로 짧은 시간에 60조원까지 팽창했던 카드 대출 때문이었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 큰 문제는 누가 카드론을 받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현재 은행에서 대출받기가 어려워 제2 금융권이나 대부업체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7등급 이하 저신용자가 700만명을 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지난해 이들에게 발급된 신규 신용카드는 104만장으로 62.5%가 급증했다. 저신용자들 가운데 평균 10% 이상이 카드대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산은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카드대출을 받은 가구 가운데 하위 40%의 저소득 계층의 카드빚이 평균 1천71만원인 것으로 분석됐다.

대출이자가 낮은 은행에서 신용대출이나 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는 저소득층이 15% 이상의 이자를 감수하고 저축은행이나 신용카드 대출, 할부금융사 등을 전전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상황이 더 나빠지면 이자가 30%를 훌쩍 넘어가는 대부업체로 가거나, 그보다 더 열악한 사채업체를 기웃거리게 된다는 것은 거의 정해진 수순이다. 실제로 지난해 은행들이 가계에 대출해 준 금액은 5% 내외밖에 늘어나지 않은 반면 저축은행과 신용카드 대출 등은 두 배 이상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가계대출이 800조원을 넘도록 한계상황에 온 지금, 시중은행들이 더 이상의 가계대출을 늘리기 어려워하는 동안 저축은행과 신용카드사·할부금융사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위해 서민들을 상대로 출혈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가계대출 규모가 아직 크지 않았던 2003년 카드대란 당시와는 달리 한편에서는 이미 안고 있는 800조원의 대출부담 속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거의 늘어나지 않고 있는 낮은 소득 환경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서민들이 시중은행도 아닌 고금리의 제2금융권 대출경쟁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은행과 농협의 카드사 분사, 하나SK카드와 외환카드 합병, 우정산업본부와 산업은행의 카드사업 진출 등 신용카드사들이 출혈경쟁을 할 수 있는 동기는 수두룩하다. 정부는 아직 신용카드사의 연체율이 2%도 안 되기 때문에 우려할 상황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2003년 카드대란이 나기 직전인 2001년만 해도 신용카드 연체율은 2%에 불과했다. 연체율이 순식간에 20%를 넘기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신용카드 영업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긴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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