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자격사인 A씨는 2002년 모 회사에 시간제이자 기간제 노동자로 취업했다. 부푼 꿈을 안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마땅한 취직자리가 없었던 터라 A씨는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회사의 말을 믿고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다. 회사 또한 그녀의 성실성을 인정해 쥐꼬리 만큼이지만 월급도 올려 줬다. 그렇게 A씨는 무려 6년간 시간제이자 기간제 노동자로 일했다.

이른바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난 2010년 초 회사는 갑작스레 A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유는 기간만료라는 것이다. A씨는 당황했고, 꿈을 잃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필자를 찾아왔다.

A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A씨의 일을 안타깝게 여겼던 동료 B씨가 회사측에 A씨를 계속 일하게 해 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하고 도움이 될 서류 6장도 전해 줬음을 알게 됐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그 도움으로 곧 A씨에 대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제기됐다.

심문회의를 앞둔 어느 날 눈물범벅이 된 A씨가 필자를 찾아왔다. B씨가 사직서를 냈다는 것이다. 구제신청 사실을 알게 된 회사는 즉시 B씨를 불러 협박을 시작했다. 즉 불필요한 탄원으로 회사의 업무를 방해하고 누구나 열람가능한 서류를 승인 없이 반출했다는 이유로 형사고소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A씨는 해고돼 마땅하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써 준다면 없던 일로 하겠다 했다. 차마 그것만은 할 수 없었던 B씨는 두 달여간 근무시간 내내 심지어 퇴근하고서도 괴롭힘을 받아야 했고 상사의 엄포에 주변 동료들에게도 왕따를 당해야 했다.

동료의 안타까움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던 한 여성 노동자의 선택은 그녀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고, 팽팽한 긴장과 불면의 날을 보낸 그녀는 결국 회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결국 필자가 B씨를 만났을 땐 그녀의 손에 ‘일신상 사유’가 명시된 사직서 그리고 ‘향후 민·형사상 어떠한 이의제기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가 쥐어져 있었다.

B씨의 법적 권리구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즉 노동자가 사직서를 제출했더라도 그것이 ‘진의’ 아니거나, ‘기망’ 또는 ‘강박’에 의한 것이라면 부당해고를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본의가 아니거나 강박 등’에 의한 사직서 제출임을 인정받기 위한 법적 다툼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B씨의 경우 결국 또 다른 동료의 용기 있는 증언들이 필수적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권리구제를 포기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15년 다닌 직장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가진 첫 직장이기도 합니다. 쉽게 결정한 일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살자면 또 다른 동료가 저 같은 처지가 되거나, 동료들의 냉대에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될 것 같아요. 전 그게 더 무섭습니다.”

구제신청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사측 주장을 뒷받침하는 동료 노동자들의 진술서는 사측서면에 넘치도록 첨부되는데 오히려 상식적으로 봤을 때 같은 입장들이었을 동료들의 신청인 노동자에 대한 지지와 옹호의 증언들은 첨부조차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애당초 불평등한 관계인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법적절차는 그 시작부터가 불평등한 것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결코 어렵지만은 않다. 예컨대 노동위원회가 가진 사실조사기능의 적극적 활용은 근본적 개선까진 어렵다 하더라도, 위와 같은 제2, 제3의 피해노동자들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상담전화가 사무소에 쏟아지고 필자는 또 다른 B씨를 만나기도 한다. 그때마다 동료의 아픔은 모른 척하는 게 본인에게는 이익이라는 충고를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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