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도시서민들은 백화점 1층에 들어서면 우선 고급스런 실내 인테리어와 휘황찬란한 조명발에 주눅이 든다. 진열돼 있는 명품들과 그 판매가격을 확인하면 자신의 궁핍한 처지를 한 번쯤 돌아보며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다. 백화점 자체의 본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과연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고용실태도 백화점의 화려함에 걸맞게 고급스러울까.

백화점 한 점포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대략 2천명 정도다. 물론 점포의 시설규모와 매출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들 중 백화점기업에 직접고용된 노동자는 전체의 10% 이내다. 나머지 90% 이상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표 참조>
 


어떻게 이런 상황이 가능할까. 백화점기업(원청기업)은 판매시설을 소유하고 있고, 협력업체(하청기업)는 판매수수료(또는 임대수수료)를 주고 시설을 빌려 영업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악어와 악어새의 사이처럼 상호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원청기업의 경영방침이 하청기업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해 버리는 모순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90% 이상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별개의 기업에 소속돼 있지만 해당 기업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할 때 원청기업의 입장을 주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하청업체 사용자들은 경영권을 온전하게 행사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원-하청 노동자의 업무내용도 구분된다. 원청기업인 백화점의 직접고용 노동자들은 경리업무나 시설관리·영업관리가 주요 업무이고, 하청기업인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노사가 노동조건으로 주요하게 다루는 것은 임금과 노동시간 그리고 여타의 복리후생 정도인데, 그중에서도 노동시간은 어떤 측면에서 임금보다도 관심 있고 중요한 사인이다. 그런데 원청기업인 백화점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연장영업이나 행사(세일 등) 일정에 대해 하청기업 노동자들은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 정확히 밝힌다면 원청기업에 의해 노동시간을 포함해 휴일휴가·산업재해·모성보호·일과 가정의 양립 문제 등 여러 방면에서 부당하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살펴보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이나 원청기업의 노동관계법상 사용자의 의무를 가지도록 강제해야 한다는 요구는 이미 사회적으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이미 백화점 내에는 청소·보안·주차안내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 개정을 통해 노동시장을 더욱 유연화한다면 노사관계를 규정하고 있는 노동법을 전면적으로 개정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노동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용자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사용자들이 광범위하게 출현했고 앞으로도 사용자 아닌 사용자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최근 백화점 1층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조설립이 이어지고 있고, 그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속한 기업이 노조가 요구하는 노동조건을 수용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청기업인 백화점을 상대로 하청기업 노동자의 요구를 가지고 교섭할 수 있는 날이 올까. 현재로서는 법적으로든 법외적으로든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노조설립 등 조직화를 통해 집단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올해 서비스연맹의 유통업종(백화점 간접고용 노동자) 전략조직화 사업의 핵심 목표도 바로 그것이다.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되지 않는다면 정공법으로 노조조직화를 통해 집단적인 힘과 영향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스스로의 노동조건을 개선시키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다.

현재 연맹은 백화점 1층의 약 70%에 달하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함께하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향후 조직화사업을 가속화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요구가 원청으로부터 관철되는 꿈이 이뤄질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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