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가 화두다. 부자감세정책에 몰표를 던지고 있는 쪽에서도 ‘복지’를 운운하고, 2012년 두 차례의 큰 선거를 겨냥하고 있는 진보진영에서도 ‘보편적 복지’는 큰 의제다.

최근 무상급식을 ‘의무급식’으로 바꾼 데 대해 찬성한다. 진짜 의미가 살아나는 표현으로 잘 바뀌었다. 부자감세를 통해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측은 태생적 한계로 내용이 채워지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승리는 우리 쪽에 있는 것 같다. 문제는 대중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복지를 제대로 맛본 적이 없어 그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배꼽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사는 얘기를 하다 보면 가장 사회적 복지가 필요한 상황에 처해 있는 친구조차도 “그게 되겠어?”, “한국이 유럽이냐?” 등의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리고 국민들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얘기하면 화들짝 놀라거나 다시는 안 볼 기세다.

그러나 대책은 명확하다. MB 정부의 전략은 ‘적게 걷어 적게 쓴다’다. 그래서 부자감세 정책을 머뭇거림 없이 구사하고 목표 경제성장률 달성을 위해 재정을 동원하고 공기업 주머니를 털어 대규모 땅파기 공사를 벌인다. 오건호 박사가 들여다본 ‘금고’에 따르면 그렇다. 오 박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가재정은 다른 나라, 늘 비교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적다. OECD 평균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5%인데, 우리나라는 31%다. 사회복지에 쓰이는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러니 사회안전망이 있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낮은 보장성의 고용보험은 해고를 살인이 되게 하고, 수혜대상이 매우 제한된 국민연금은 늙는다는 것을 참기 어려운 고통이 되게 한다. 보장성 수준이 65%정도밖에 안 되는 의료보험은 돈 없는 중증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 휴업급여는 없으니 병들면 굶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미쳐 날뛰는 대학등록금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외가 있다. 바로 산재보험이다. 주요 사회보험은 낮은 보장성에도 매년 큰 폭의 적자를 보이고 있다. 적게 걷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보험 수준이 이러할진대 산재보험이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을까. 당연히 낮은 보장성도 문제이고 게다가 “절대 산업재해 아님” 이라고 못 박아 버린다. 그런데 기막히게도 산재보험은 매년 수천억원에서 1조원이 넘는 흑자를 경신하고 있다. 2011년은 보험료율까지 낮췄다.

산재사망률 세계 1위인 우리나라에서 다치거나 병드는 노동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산재환자를 모두 국민건강보험으로 보내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가천의과학대 임준 교수 등이 “숨은 산업재해가 정부 공식통계 재해자수의 12배 이상”이라고 발표한 국가안전관리 전략수립을 위한 직업안전연구 보고서가 잘 말해 주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정부가 매년 5조원에 육박하는 재정을 쏟아붓고 가난한 가입자들도 일정한 비용을 부담하는 사회보험이다. 그런데도 연간 지출되는 보험료가 5조원도 채 되지 않는, 사업주만 부담하는 이 산재보험기금은 20% 이상이 남아돈다.

결과적으로 기업주들이 국민의 부담분을 가로채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를 용인하고 있다. 연구결과대로라면 산재보험료를 12배 이상 더 걷어야 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경신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나아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지난해 말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큰 갈등을 빚었던 것처럼 사회복지예산은 다른 항목에 비해 줄었다. 자연증가분만 반영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증액요구가 삭감된 영역도 많다. 이들 영역은 ‘보편적 복지’ 수준에도 끼지 못하는 사회적 구제가 필요한 영역(저소득층과 장애인 보육 및 생계지원)인데도 말이다. 정부는 국민대다수가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거나, 국민대다수를 불가촉천민으로 여기는 ‘나쁜 사마리아인’이 되고자 하는 것 같다. 부자와 기업주들에게만 유리한 현재의 사회복지 체계는 바뀌어야 한다. 단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된 사회복지의 단맛을 느껴보게 해야 한다. 그 후에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테니까. 내년에는 바꿔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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