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대단한 사과를 하겠다는 건지…. 삼성전자는 주현이 마지막 가는 길까지도 힘들게 만드네요."
지난 16일 오후 2시 천안 순천향병원 장례식장. 이날 정오로 예정된 삼성전자의 조문을 기다리다 지친 고 김주현씨의 어머니 송아무개(58)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날은 충남 아산 삼성전자 LCD사업부에서 일하다 탕정사업장 기숙사에서 투신자살한 고 김주현씨가 사망한 지 96일째이자 장례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삼성계열사인 신라호텔이 한복 출입금지 사건을 일으킨 것에 대해 이부진 신라호텔 대표가 직접 나서 사과를 했던데, 삼성전자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아무도 오질 않네요. 그간 삼성전자가 한 행동을 보면 삼성전자는 사과 조문을 오지 않을 것 같아요."
고 김주현씨의 누나 김정(29)씨의 예측은 적중했다. 삼성측은 이날 유가족에게 "부담스럽다"며 ‘환경정리’를 요구했다. 환경정리란 기자단 철수와 삼성일반노조 홈페이지에 올라간 고 김주현씨 관련 투쟁소식지 삭제였다.
"장례일까지 다 잡아놨는데, 이게 뭡니까. 뭐가 그리 민감하고 부담스럽습니까."
삼성전자 본사와 통화하는 고 김주현씨의 아버지 김명복(56)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삼성전자의 조문을 기다리던 사이 지친 어머니와 누나는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면 고 김주현씨의 사진을 어루만지며 소리 없이 울다 또 지쳐 잠이 들었다.
96일이라는 시간을 증명이라도 하듯 영정사진 옆 조화도 전부 메말라 시들어 있었다. 그 사이 간혹 고 김주현씨의 동료들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모두들 침묵했다. 삼성 탕정공장 인사관리자가 항상 따라붙었기 때문이다. 이날 장례식장에도 삼성 탕정공장 인사관리자가 나와 현장 상황을 삼성전자 본사에 보고했다. 결국 기자들이 철수하고 온라인 글도 삭제됐지만 삼성측은 끝내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삼성의 사과를 받고 싶었어요. 잘못을 인정하는 삼성의 그 말 한마디가 절실했어요. 그게 싸움을 시작한 이유였어요."
김명복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는 "삼성이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 주기를 바랐다”며 “주현이가 인간으로서의 인정받아야 할 존엄을 지켜 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15일 삼성전자와 합의하면서 고용노동부 대전지방노동청 천안지청에 제기한 진정을 취하했다. 천안지청은 80일 넘게 재조사를 거듭하다 12일 검찰에 지휘품신을 요청했다.
하지만 검찰은 14일 천안지청에 보강수사를 지시했다. 앞서 아산경찰서는 3월 회사측의 과실 여부에 대해 무혐의로 수사를 종결했다. 유가족은 회사측이 장시간 노동에 따른 근로기준법·산업안전보건법·기숙사안전규칙 등 노동관계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지만 관계부처는 서로 사건을 떠넘기기만 했다. 그렇게 96일이 지나는 동안 삼성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고 김주현씨의 아버지 김명복(56)씨는 지난 16일 충남 천안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서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삼성을 대하는 국가기관과 언론의 침묵이 가장 힘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나를 회유하기 위해 불러낸 삼성 사람들이 '국가기관이 삼성에게 과잉 충성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할 정도였어요. 삼성공화국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자살까지도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절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실낱같은 희망도 발견했다. 김씨는 "삼성 앞에서 집회를 할 때면 지나가는 직원을 통해 주현이 때문에 근무환경이 바뀌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며"삼성이 야간근무를 강요하지 않고 상사가 격려의 말을 많이 하는 등 내부에서 변화가 있는 것 같아 희망이 보인다"고 말했다.
김씨는 삼성이 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지금의 삼성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삼성이 이번 사건을 통해 노동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 흐름이라는 게 있잖아요. 삼성이 지금과 같은 노동문화와 잘못된 관행을 바꾸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반드시 더 큰 저항으로 나타날 겁니다. 국가를 위해 삼성 스스로를 위해 삼성은 변해야 합니다.”
김씨는 장례식이 끝나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고 했다.
"주현이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희생당했어요. 부모로서 너무나 한이 됩니다. 투쟁이 끝나면 제2의 주현이가 나오지 않도록 주현이처럼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어요." 김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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