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간 물가 문제가 계속 경제이슈가 되고 있다. 올해 3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3월 대비 4.7% 상승했는데 특히 서민들의 체감물가와 직결되는 농축수산물과 석유류는 각각 14.9%, 15.3% 상승했다. 지난 10년간 농축수산물과 석유류의 연평균 가격 인상률이 4.2%, 5.8%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꽤 높은 상승률이다.

이러한 물가상승은 국내외 정세 변화와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먼저 세계경제 회복과 중동 정세 불안, 그리고 글로벌 유동성 확대에 따른 원자재 투기까지 합해져 원유가가 크게 상승했다. 또한 이상기후로 인한 국제적 농산물 생산 감소, 구제역 파동과 이상한파로 인한 국내 농축산물 공급 차질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이러한 공급측 원인은 정부 대응에 따라 약간의 가격 변화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불가항력적인 면이 크다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명박 정부 초기부터 이어진 수출 증대를 위한 고환율 정책이 수입품 가격을 더욱 상승시켰고, 건설사와 부동산 소유자를 위한 부동산시장 활성화 정책 등이 서민들의 주거비를 크게 상승시켰다. 주거비 문제는 최근 전세난으로 대표되는 서민들의 생활고의 핵심 중 하나다. 3월 집세 인상률은 전년 동기 대비 3.2%로 지난 10년간 평균 인상률 2.3%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위와 같은 복합적 이유로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지난 2월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에스토니아를 제외하고 가장 높았다. 정부 정책이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물가 인상을 더욱 부추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거꾸로 뒤집는 것만으로 물가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통화정책이 그러하다. 일부에서는 현 물가대책으로 환율 인하와 금리 인상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통화정책으로 물가가 다소 낮아질 수는 있으나 한국 경제에서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환율 하락, 즉 원화가치가 상승할 경우 금융시장에 대규모로 진입해 있는 외국인 투기자본들은 큰 외환매매 차익을 획득하며 국부를 해외로 이전할 수 있다. 지난해 4분기 외국인들은 4천900억달러 규모의 증권 투자를 했는데, 원화표시 자산가격에 변동이 없다고 해도 환율이 10% 하락하면 이들은 490억달러, 약 50조원 가까운 차익을 얻는다. 이자 인상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가계 부채는 변동이자율 비중이 상당히 높은데 이자율이 상승할 경우 795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이자액이 크게 늘어난다. 이자율 상승으로 인한 투자 감소와 고용 축소 역시 문제다.

사실 통화정책을 중심으로 물가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정책은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다. 80년대 이후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금융자본의 실질 이자율을 보장하기 위해 물가인상에 대해 매우 기민하게 대응해 왔다. 성장과 고용을 잠시 포기하더라도 물가만은 잡아야 한다는 것이 신자유주의 정책 교리의 핵심이었다. 한국도 98년 IMF 구조조정 시기에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한국은행법을 바꿔 한국은행의 첫 번째 목표를 경제성장과 고용이 아니라 물가관리에 두도록 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요구는 물가 인하보다는 실질소득 보장에 맞춰져야 한다. 현재와 같은 정부 경제정책 시스템과 무방비 금융시장 시스템에서 결국 물가 인하 요구는 정부에게 이자율 인상, 외환시장 개입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될 수밖에 없고 이는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조건보다는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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