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법과 원칙에 입각해 노무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필자가 단체교섭 자리에서나 노동위원회·고용노동부에서 사용자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법과 원칙’이라는 것은 좋은 표현임이 분명한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뒤틀리는 건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적어도 노사관계 내에서는 ‘법과 원칙’이 사전적 의미로 쓰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필수공익사업에 해당하는 A사는 2010년 10월 말로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만료돼 새로운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노조와 교섭을 진행하고 있었다. A사의 사용자는 교섭 자리에서 “노조 전임자급여 지급금지 제도의 시행으로 유급전임자는 인정할 수 없지만 일정 정도의 무급전임자는 인정해 줄 수 있다”며 선심 쓰듯 교섭안을 내놓았다. 노조 간부들이 “최소한 타임오프 상한선 정도는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발하자 사용자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노조의 요구를 묵살했다.

타임오프 상한선과는 별개로 개정 노조법의 기본 취지가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말라는 것이기에 ‘법과 원칙’에 입각해 이제는 더 이상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조가 필수유지업무 유지수준(75%)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파업을 진행할 경우 업무방해죄로 고소를 당할 수 있느니 주의하라는 ‘법과 원칙’에 따른 친절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A사의 경우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만료된 후에도 자동연장조항에 의해 효력이 지속될 수 있었지만, 사용자는 유효기간 만료 직후 단체협약 해지를 노조에 통보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노조는 결국 파업에 돌입했다. 필수유지업무 제도를 준수하며 진행된 파업에서 파업참가가 가능한 인원은 소수에 불과했기에 사실상 파업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웠고, 그나마도 파업참가자의 100분의 50에 해당하는 대체인력의 합법적 투입으로 무력화됐다. 파업이 2주가량 진행된 후 사측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특정 생산공정 내지 라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것도 불특정 파업참가 조합원을 상대로 하는 직장폐쇄였다. 사측이 제출한 직장폐쇄 신고서에서 직장폐쇄의 범위는 ‘파업에 참가하고 있는 조합원 40여명’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노조가 직장폐쇄에 맞서 회사 정문 옆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하자, 사측은 갑자기 주말 프로젝트를 수주해 오더니 조합원들에게 주말에도 필수유지업무 범위 내에서는 업무를 하라고 지시했다. 평소에도 가끔씩 주말 특근을 해 왔으니 파업기간 중에 갑자기 생긴 업무라 하더라도 필수유지업무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합원들이 주말 특근은 평상시 업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업무지시를 거부하자 사측은 조합 지도부와 핵심 조합원들을 업무방해죄로 고소했다. 그리고 노조위원장을 따로 불러 조용히 얘기했다. “당신하고 노조 사무국장만 사표를 쓰면 모든 문제가 조용히 해결될 것이다”라고.

A사 노조는 노조법상 타임오프 상한을 초과하는 유급전임자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파업돌입 이후에는 노조법상 필수유지업무를 철저하게 유지했다. 사측이 직장폐쇄를 단행하자 관계법규에 따라 회사에 출입하지 않고 정문 옆에서 천막농성만을 진행했다. 그렇지만 노조는 결국 업무방해죄로 고소를 당하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장기간 이어진 노동쟁의는 조합원들이 본사로 몰려가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원청회사로 몰려가 집단적인 항의를 하고 나서야 겨우 해결됐다.

사측은 ‘법과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노조를 탄압하는데, 노조 내의 법규담당자인 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직력과 투쟁으로 돌파하세요”라는 의견을 낼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법규담당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법을 이용한 대응방안 마련일 텐데 필자는 일반적인 법적 대응과 함께 조직력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조직력과 투쟁력이 담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떠한 법적 대응도 노동자와 노조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 노사관계에서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의 행사가 ‘법과 원칙’이라는 가치와 왜 충돌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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