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국내언론이 외면한 것에 비해 프랑스 사회 전체의 주목을 받았던 대우 김우중 전 회장 체포결사대의 프랑스에서의 열흘. 체포결사대로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돌아온 민주노동당 황이민 기획국장의 기고를 어제에 이어 싣는다.>


*사진 한 장 올리는데 40분 걸려 - 파리에서의 생활

우리는 25일 일요일 체류 기간 동안 머무를 아파트로 짐을 옮겼다. 이 아파트는 SUD의 한 활동가가 마침 해외출장 중이어서 SUD-PTT(우체국, 통신 노조연맹) 차원에서 쉽게 빌려줄 수 있었다. Rue Henry Chevreau라는 아파트는 파리 도심에서 약간 외곽에 위치한 메닐몽땅역 근처에 있는데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지역이었다. 아파트는 우리가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크기에 욕실과 주방도 쓸만했다. 파리에서 활동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역시 먹는 문제였다. 프랑스 요리는 값도 비싸고, 차례로 나오는 요리가 시간이 많이 걸려(참고로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하는데 거의 2시간을 소요한다) 일정에 쫓기는 우리로서는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우리는 낮에 이동하면서 샌드위치로 대부분의 점심을 때웠다. 집에 들어오면 주로 라면에 김치, 고추장 등으로 해결했고 아침에도 일정이 바빠 역시 라면으로 때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일정이 빨리 끝나는 저녁에는 가끔 된장찌개도 끓여먹었고 한번은 김치찌개를 끓여 결사대원들이 나란히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호강(?)도 했다.

프랑스에 도착한지 3일 만에 김치가 동이나 고추장으로 반찬을 대신하기도 했고, 홍세화 선생의 안내로 된장찌개 재료와 라면 한 박스를 사기도 했다. 아무튼 라면을 매일 먹다시피해도 입에 맞지 않는 이국 음식에 비하면 최고의 음식이었다.

하루 일정이 끝나면 우리는 늦은 저녁을 먹고 그날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하고 내일 일정을 점검하는 등 매우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각자 역할을 나누었는데 박점규 동지는 정보통신을 담당해 전화선을 통해 국내의 소식을 챙기고 일일보고서를 올리느라 무척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국내에서 초고속 통신망을 이용하다가 속 터지는 전화모뎀으로 접속하느라 무척이나 답답해 했는데 사진 한 장을 올리는데 무려 3∼40분이 소요될 정도였다. 유만형 동지는 오랜 자취생활에서 쌓은 공력으로 우리의 주린 배를 착실히 챙겨주셨다. 장광렬 동지는 특유의 섬세함으로 통역 및 총무 역할을 해주셨다. 아무튼 낯선 이국 땅에서 우리의 팀웍은 척척 맞았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한번도 없을 정도로 화목하게 지냈다.


*프랑스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지원과 연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선생의 인상과 분위기에서 나는 깊은 강물의 고요함을 보았다. 언제나 은근한 미소와 따뜻한 말씀으로 우리가 어려울 때 큰 힘이 돼 주셨으며 복잡하기로 유명한 파리의 곳곳을 택시운전을 통해 쌓은 노하우로 우리를 차량으로 인도해 주시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다.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 거의 전 시간을 우리에게 할애해 주셨으며 활동에 관하여 많은 조언 또한 아끼지 않으셨다. 만약 홍세화 선생이 안 계셨더라면 우리가 과연 파리로 갈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홍세화 선생은 올 10월께 영구 귀국하실 예정이신데 한국에 와서도 우리 노동자들의 활동과 투쟁에 큰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올해 40대 초반인데 4명의 아이를 키우면서도 SUD의 핵심 지도부로 활동하고 있는 베르벤느 동지 또한 우리가 성과적인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일등공신이라 할만하다. 그녀는 특유의 왕성한 활동력으로 우리의 모든 일들을 뒷받침 해주었다. 각 단체와의 연락, 하루 스케줄 확정, 각종 집회에 인원 동원, 언론사와의 연락, 심지어 현수막과 머리띠 제작 등 그녀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ATTAC의 따르따코프스키 사무총장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프랑스는 물론 전 유럽에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의 최선두에 서있는 탁월한 조직가이자 지도자였다. 40대 후반인 그는 프랑스의 노동, 사회단체들과의 회견을 주로 조직하고 많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정부의 노동자 탄압 실상과 체포결사대 활동의 의의를 적극적으로 알려나갔다.

그 외에도 수많은 프랑스동지들이 우리를 도왔다. 피에르 루세(ATTAC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씨는 동네 할아버지 같은 친근한 인상의 소유자였는데 그의 아내 살리와 함께 최선을 다해 우리를 지원했다. 우리가 프랑스에서 만난 동지들은 운동의 최고 지도부에 속하는 사람들인데도 어떠한 권위 의식이나 관료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하나같이 소박하고 겸손했다. 생활 또한 매우 검소하였는데 이러한 자세와 풍모는 우리 나라의 운동가들이 반드시 배우고 또 실천해 나가야 하는 중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을 새삼 느끼게 했다. 우리의 일을 마치 자기들의 일과 똑같이 혼신의 힘을 다해 지원해주는 프랑스 동지들에게서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감동과 동지애를 느꼈다.


*판사노조, "우리가 김우중 재산 추적하겠다"

유럽연합 의회 의원으로 동아시아위원회 담당이면서 인권위원회 담당인 알랭크리뱅 의원과의 면담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알랭크리뱅은 유럽연합 의회의 공식적인 결정을 통해 유럽정부에 김우중씨의 입국금지 요청을 하고 3월12일부터 17일까지 정기의회 기간 동안 한국정부의 노동자탄압에 대한 공식 항의서한을 채택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우리가 원한다면 프랑스 선거 후 유럽의 사회당, 사민당, 녹색당 등 다양한 소속의 의회의원들이 공식적인 조사단을 결성해 한국에 보내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판사노조와의 면담도 예상치 못한 성과였다. 사무실에는 판사노조 울리히 샬클리 대표와 에버린 쉬레 마린 사무총장, 그리고 에릭 알트 국제담당 판사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판사노조의 국제담당 에릭 알트 판사는 대우그룹 사태의 최대 희생양인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소속 판사들의 연대서명을 통해 한국정부의 노동자 탄압에 대한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한국 정부가 인터폴에 수사협조 요청을 하면 프랑스 현지에 있는 김우중의 재산을 추적해 확인하는 일을 추진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국제인권연맹과의 면담은 국제연대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우리가 한국 정부의 노동자 탄압 상황에 대해 얘기를 전하자 그는 우선 우리가 탄압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세밀하게 작성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IMF 사태 이후 한국정부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강행하면서 이에 저항하는 한국의 노동자들을 어떻게 탄압했는지 세밀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국제인권연맹에서 공동 조사단을 한국 인권단체와 함께 꾸리자고 제안해왔다. 국제인권연맹은 또 조사단을 한국에 파견하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UN인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에 정식으로 한국 정부를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주요 단체 및 일반시민들까지 참석한 공개설명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성과였다. 이 자리에서 대우자동차노조의 상황, 대우차노조에 대한 민주노총의 연대투쟁 상황 등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 진지한 토론이 있었다. 그 결과 이들은 프랑스의 시민, 사회, 노동단체들이 대우자동차 투쟁과 관련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한국의 노동자 탄압을 규탄하는 항의서한을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전달하고, 빠른 시일 내에 항의성명서를 채택하고 이를 한국의 일간지에 광고로 싣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우선 4만프랑을 모금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내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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