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후 집으로 복귀하다가 집 근처에서 쓰러져 사망한 경우도 업무상재해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한 사립대 기계자동차학부 교수 겸 기획처장으로 일하던 노아무개(50)씨는 지난 2009년 4월28일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열린 전국대학 기획처장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다.
 
이어 같은날 저녁 6시30분께 회의 종료 후 교수신문사 소속 기자와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밤 9시에는 기자와 술을 마셨다. 노씨는 11시30분께 기자와 헤어진 후 고속버스를 타고 다음날 새벽 3시 대구에 도착했다.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동대구역 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주거지인 대구 수성구 소재 아파트 근처에 도착했다.

아파트 경비원은 같은날 새벽 5시께 아파트 앞 화단에서 코피를 흘린 채 쓰러진 노씨를 발견해 경북대병원으로 이송했다. 노씨는 같은해 6월 외상성 뇌내출혈 등으로 병원에서 수술 후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교직원연금공단 “출장 중 음주는 개인 중과실”

노씨 부인은 “노씨가 학교회의에 참석하고 학교 홍보를 위해 신문기자를 만나 업무수행을 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업무상재해”라며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 및 공무원연금법 등 관계법령에 따라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이 유족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신청했다.
하지만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은 “노씨가 신문기자를 만나 식사와 음주를 한 것은 업무에 해당하지 않아 업무상재해로 볼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단은 “설사 고인이 업무상재해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이는 망인의 과음으로 인한 중과실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 유족보상금은 감액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올해 1월 유족보상금청구부결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소송비용을 공단이 부담하고, 지연손해금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노동자가 출장 중인 경우에는 그 용무의 이행 여부나 방법 등에 있어 포괄적으로 사업주가 책임을 지고 있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출장 과정 전반에 대해 사업주의 지배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신문기자의 인터뷰 제의에 따라 만나게 돼 개인적인 친분관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대구에서 거주하던 고인이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대학 기획처장협의회 회의에 참석하는 기회에 기자를 만난 점 △당시 나눴던 대화가 고인이 학교 기획처장으로 근무하면서 수행하던 교육역량강화사업 등 업무에 대한 것인 점에 비춰 업무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원 “출장 중 업무관련 음주도 업무 일환”

재판부는 또 “고인이 자신의 사적 영역에 도달하기 전, 출장이 종료되기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외부적 충격이 머리에 가해져 쓰러졌으므로 이는 출장 중 발생한 재해로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공단이 유족보상금을 감액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는 △고인과 기자가 함께 마신 술의 양이 많지 않고 △고인이 다음날 예정돼 있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대구에 도착해 스스로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거주지에 도착한 점 등을 봤을 때 사고 당시 만취했다고 볼 수 없어 망인의 중대과실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관련 판례]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5 민사부 2010가합1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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