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회진을 와도 몇 초 만에 가 버려요. 간호사들이 약을 주는데 설명을 해 주지 않아 제가 일일이 무슨 약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하루는 밤에 열이 나 호출을 해도 안 오길래 참다 못해 직접 찾아가 화를 내기도 했어요. 이젠 호출하지 않고 제가 직접 갑니다."(직장암 환자)

"회진 돌고 처방 난 오더 정리에, 주사 약 돌리고 환자분들 시간 맞춰 검사 보내고, 퇴원 처리에다가 여기저기서 울리는 콜벨 듣고 병실에 들어가요. 의사 일인데 환자는 '안 해 준다'고 화내고, 결국은 내가 해요. 우리 소원은 일이 끝나면 원없이 잠을 자는 건데요. 생체리듬이 깨져 잠을 잘 수가 없어요."(병동 간호사)

환자도 병원도 노동자도 인력부족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의료노조와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보건의 날을 맞아 병원인력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연합회는 3월21일부터 4월2일까지 422명의 환자·보호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병원인력 만족도 조사 결과를 이날 발표했다. 암(85.2%)·희귀난치성질환(5.2%)·기타 질환(9,6%)을 갖고 대형병원(87.9%)과 중소병원(12.1%)을 이용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병원서비스 실태와 만족도를 환자의 시각에서 조사한 것은 이번 설문조사가 처음이다. 의료서비스를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평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졌다.



서로 보기 힘든 환자와 간호사

연합회에 따르면 담당의사 회진 중 환자에 머무는 시간은 '2분 이내'가 83.3%에 달했으며, 의사를 대면하는 시간에 대한 환자 만족도도 9.3%에 불과했다. 반면 응답자 중 37.9%는 주기적 간호행위 외에 간호사와 충분한 대화를 자주 나눴고, 26.5%는 간호사와의 대면시간이 충분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간호사 인력의 충분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64.8%가 불충분하다고 응답했다. 연합회는 “의사의 진료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해소해 주는 간호사로부터 더 밀접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현재의 병원 간호사 인력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간호사의 업무 개입이 상당해 환자가 간호사에게 가장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투약서비스는 상당부분 약사가 아닌 간호사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로 인해 환자가 약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 투약오류 등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 그 밖에도 △긴급 호출벨을 눌렀을 때 즉시 대응하지 않고 △검사실에서 환자 혼자 방치되고 △병원 내에서 늘 낙상이나 투약오류와 같은 위험이 노출되고 △주말이나 야간의 응급상황에서도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점 등 전반적으로 환자가 필요로 할 때 의료서비스가 적시에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근골격계 부담에 시달리는 간호사

병원노동자의 노동안전도 위협받고 있었다. 노조에 따르면 조합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5년 45.1시간에서 올해 46.6시간으로 늘었다. 점심 식사시간도 45.1%가 '15분 이내'라고 답했다. 이들의 노동환경을 전국 취업자 평균과 비교했을 때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20배 이상 근골격계 부담이 높았다.

일로 인한 건강증상은 모든 항목에서 높게 나타났는데, 절반 이상이 스트레스 전신피로와 근육통·요통·두통 등의 증상을 호소했다. 취업자의 경우 50% 이상이 호소한 증상은 하나도 없다.

노조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처럼 간호사 인력당 환자 비율을 법으로 명시한 병원인력법 제정할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하고, 직종별 적정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 의료기관 인력법 제정안을 9월 중 발의할 예정이다. 또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통해 재정 확보방안을 마련하고, 의료공급체계 혁신방안과도 연계할 방침이다.

이주호 노조 전략기획 단장은 “시민단체들과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벌여 재원을 마련해 왜곡된 수가 제도를 바로잡겠다”며 “인력 문제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의 안전보장과 직결되는 문제”고 강조했다.

문제 해결의 관건은 재원 마련방안

문제는 '재원'이다. 이성식 전 보건의료산업사용자협의회 공동대표(관동의대 명지병원 진료부원장)는 사견임을 전제로 "환자의 생명을 위해 인력 확충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노조의 문제의식에 동의한다"며 "관건은 비용인데, 재원 마련을 위해 병원계를 넘어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끌어 낼 수 있도록 법적인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재원 조달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창준 보건복지부 의료자원과장은 "문제의 핵심은 재원 조달방안"이라며 "현재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 보장성 확대방안을 논의 중인데, 인력 문제까지 포함하려면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과장은 "고가의 의료장비 등 의료비 남용 비용을 줄여 인력에 투자할 수 있도록 수가 보조를 단계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며 "인력 문제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4월 중 전문가가 참여하는 TF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공급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형근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병원들이 수익이 확보되면 이를 인력에 투자하기보다는 시설 확충이나 첨단 장비 도입 등에 우선적으로 투자해 인력확충을 기피한다"며 "수가인상이 인력확충으로 이어지지 않고 기존 인력에 대한 보상을 추가하거나 시설 장비 투자비로 전환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우려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추미애 민주당 의원·이애주 한나라당 의원·간호조무사 협회·중소병원협회·한국경총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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