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자산업은 가장 큰 수출산업이자,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을 인정받는 몇 안 되는 산업 중 하나다. 하지만 전자산업의 노동실태는 70년대 청계천 봉제공장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열악하다.”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가 6일 펴낸 ‘전자산업 생산·공급사슬·노동조건의 특징’ 보고서에서 내린 우리나라 전자산업에 대한 진단이다. 전자산업 전체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하청으로 편입돼 있고, 노동조건이 극히 열악하다는 분석이다. 노동시간은 비슷한데 평균 근속연수는 1년으로 짧고,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에서 많아 봐야 2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은 한국노총 금속노련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을 모두 합해도 1만5천명 미만이다. 산업 내 조직률은 1% 미만으로 극히 낮다.

◇삼성·LG 하청계열화=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한국 전자산업이 일부 반도체기업과 독자 브랜드가 있는 일부 중소기업을 제외하고 모두 삼성전자·LG전자의 하청기업으로 구성돼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매출액 합계가 전체 전자산업의 86%에 달한다는 것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삼성전자와 삼성SDI 같은 관계사 매출액은 140조원으로 전체 전자산업의 62%, LG전자와 그 계열사 매출액은 55조원으로 24%를 차지했다.

그러나 이들 2개 기업과 계열사의 종사자는 전체 전자산업의 37%에 불과했다. 전체 전자산업 종사자는 43만명으로 삼성전자와 계열사가 10만4천명, LG전자와 계열사가 5만8천명을 고용하고 있다. 연구소는 그러나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중소사업장에서 위장도급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며 “전자산업 내 대규모로 존재하는 위장도급 사업체의 노동자수가 측정되지 않아 과대 추정됐다”고 분석했다.

생산방식도 독특했다. 세계 전자 대기업이 생산 일체를 외주화하는 반면 삼성·LG전자는 핵심부품을 내부에서 생산하고 동시에 노동집약적 생산부분을 외주화했다. 애플이 제품개발과 디자인만 담당하고, 생산일체를 대만계 폭스콘에게 넘기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하청시스템을 활용해 탈생산의 이점을 누리고 자체 생산을 통해 생산과정 전부를 통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윤 버팀목은 산업단지=연구소는 보고서에서 “이런 이중생산이 가능한 것은 저임금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된 산업단지와 고강도 노동을 견디는 내부 노동시장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두 전자회사와 그 계열사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몰려 있는 구미·반월시화·서울디지털산업단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불법파견 노동’과 ‘각종 노동탄압’이 산업단지를 표현하는 용어였다.

연구소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물량조정에 따라 하청기업과 노동자가 모두 직접적 타격을 받고 있다"고 우려했다. 자본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물량 축소 때마다 경영위기에 빠지고 초과근로를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은 심각한 소득감소를 겪는다는 것이다. 산업단지 노동자들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부족한 소득을 초과근로를 통해 메우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통계에서 주요 산업단지 중소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평균 월급여는 200만원 내외다. 연구소는 이에 대해 "통계가 부정확하다"고 주장했다. “정부통계는 산업단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불법파견 노동자를 포괄하지 않아 종사자수가 과소 측정되고, 급여는 과대 측정되는 효과를 낸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노동단체에서 서울디지털단지와 반월·시화공단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정부통계와 차이가 크다. 서울남부노동자권리찾기 사업단이 최근 서울디지털단지를 조사해 보니 생산직 노동자들의 50%가량이 파견업체를 통해 취업하고, 생산직 평균 월급여가 110만원에 불과했다. 안산 노동단체가 조사한 반월·시화공단 실태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단 지역에 200개가 넘는 파견업체가 성업 중에 있고 월평균 급여는 남성 150만~200만원, 여성 100만~160만원 수준이었다.

연구소는 “산업단지나 인근지역에 위치한 삼성전자·LG전자의 생산직 노동자들도 고강도 노동을 감내하고 있었다”며 “이런 노동조건을 강요할 수 있는 노동력 시장의 존재가 두 회사의 국내 생산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한지원 연구소 연구실장은 “공급사슬에서 파급력을 갖춘 기업과 공단 전체를 대상으로 지역조직화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며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산업에 공급하는 핵심 지역인 공단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조직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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