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가을로 접어드는 것이 당연한 9월에도 선풍기를 켜 봐야 후텁지근한 바람만 나오는 유난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그 더웠던 여름 내내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선 이들 몇몇이 있었다. 이들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 손해보험사의 자회사 두 곳에서 대물보상업무를 수행하던 노동자들이었다. 모기업 직원들의 수배에 달하는 노동강도와 임금차별 등을 참지 못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기로 마음먹었다.

노조 결성과 창립총회, 임원진 선출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드디어 직원들에게 노조 결성을 알리자 불과 3일 사이에 조직대상의 90%가 가입할 정도로 노조에 대한 직원들의 호응이 좋았다.

하지만 노조 결성 직후부터 탈퇴 강요로 대표되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극심해졌다. 주말 새벽시간에도 조합가입자를 방문하거나 전화를 하면서 탈퇴를 강요했고, 부모님을 통해 탈퇴를 회유했다. 결국 노조는 초반 기세를 이어 가지 못한 채 어이없게 해산을 선언하게 됐다. 당시의 정황은 <매일노동뉴스>에도 두세 차례 기사화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조 해산 이후 임원진과 핵심 인원에 대한 전보 발령·해고 등 보복적 인사조치가 단행됐다. 이는 명확하게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침해하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규정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이런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방법으로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는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발표한 노동위원회 브리프의 2009년과 2010년 부당노동행위 통계를 살펴보자. 2009년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건수는 1천89건, 이 중 일부라도 인정받은 인정건수는 86건으로 인정률은 7.8%에 불과하다. 2010년에는 인정률이 더 낮아졌다. 1천807건 접수에 인정건수는 51건으로 급락해 인정률은 2.8%까지 하락했다.<표 참조>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인정률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가 없어서가 아니라 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인정기준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원과 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인정과 관련한 판단과 입장은 언제나 ‘노동자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노동자가 노조를 결성·운영하면서 사용자가 노동3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언제나 기록하거나 녹취 등을 채증해 증거자료로 제출하지 않는 이상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받기 어려운 문제점이 발생한다.

대형 손보사의 자회사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을 통한 회유와 협박까지 자행되고 있다. 노조가 신규로 결성돼 조직력이 약한 상황이라면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응하기는커녕 신변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노조가 와해되는 문제까지 발생하게 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법원이나 노동위원회에서는 노동자나 노조의 구체적 입증이 없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결정을 하고, 그 결과가 인정률 2.8%라는 수치로 나타난 것이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손보사의 자회사 두 곳에서 노조 결성을 이유로 최종 해고된 노동자는 4명에 이르고, 이 중 한 곳의 직원 2명은 대법원에서 사용자의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를 인정받았다. 다른 한 곳의 직원 1명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패한 뒤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고, 다른 한 명은 부당해고 관련 소송에만 참여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노동위원회에서 사용자는 “노조가 없는 이상 노사관계 질서를 신속하게 정상화하는 취지의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은 인정될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사용자에 의해 노조가 와해된 상태에서 하는 주장으로는 참으로 비겁한 변명이라 할 것이다.

다행히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이 사건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했고 나아가 사용자가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2009구합19717)에서 법원은 “부당노동행위는 근로자가 노동조합의 간부인지 여부, 해당 노동조합이 해산됐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사용자가 근로자의 노동조합의 업무를 위한 정당한 행위를 이유로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 성립할 수 있다”고 명확하게 판시했고 이 결과는 대법원에서 최종 인정됐다.

하지만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최종적으로 인정받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 사용자가 원했던 노조 와해는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해고자들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통 속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조합원이었던 직원들은 전국 각지로 흩어진 채 근무하고 있다.

박준성이 쓴 ‘노동자 역사 이야기’에는 80년대의 노조 탄압과 박해, 그리고 현실적으로 인정받기 너무나 어려운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지금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 노사관계는 언제쯤 80년대를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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