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업무상재해는 노동자의 업무수행 중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질병을 의미한다.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그럼,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인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지아무개씨는 지난 2008년 7월부터 한 어류가공업체에서 명태가공 업무를 하던 중 같은해 10월 명태내장 제거작업을 하다 쓰러져 '자발성 소뇌실질내출혈 뇌동맥류 의증' 진단을 받았다.

공단 “인과관계 인정할 수 없어”

지씨는 혈압이나 당뇨병 등 기타 노인성 또는 혈관성 질환 없이 비교적 건강한 상태였다. 지씨의 근무시간은 새벽 3시부터 오후 1시까지였다. 아침 식사시간은 새벽 6시30분부터 7시까지다. 점심식사 시간은 오전 11시30부터 12시까지였으며, 휴식시간은 없었다. 업무량이 많아 이틀에 한 번씩 1~2시간 연장근무를 했다. 재해 발생 7일 전부터는 새롭게 홈쇼핑업체 납품이 시작돼 업무가 더 늘었다. 재해 발생 전날 지씨는 동료와 언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가 “자꾸 다투면 일을 그만하셔야 한다”고 말해, 지씨는 심적인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쓰러진 지씨는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병이 유발됐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을 신청했지만, 공단은 같은해 12월 요양불승인 처분을 내렸다. 공단은 “발병 전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로 생리적 변화를 초래하거나 업무량 증가에 따른 과로 및 스트레스가 유발됐다고 보이지 않는 등 업무와 이 사건 상병 간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결국 지씨는 2009년 11월 숨졌고, 유족은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 “과로 및 스트레스로 인해 질병 발현”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5일 공단의 요양불승인 처분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공단이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노동자가 급격한 업무가중에 시달리던 중 사용자로부터 해고 경고를 받아 스트레스를 받아 사망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법원은 △고인이 고혈압이나 당뇨병 기타 노인성 또는 혈관성 질환 없이 건강한 상태였고 △적절한 휴게시간 보장 없이 야간·연장 근무가 상시화 된 사업장에서 일하던 중 재해발생 7일 전부터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고 △재해발생 전날 동료와의 언쟁 및 그에 따른 사업주의 해고에 관한 경고로 그 스트레스는 더욱 가중됐다고 근거를 제시했다.

서울삼성병원 등도 “고인의 경우 기존 질환이 악화한 것이 아니라 갑작스런 긴장감 등 급격한 혈압 상승으로 인한 뇌출혈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의학적 견해를 법원에 제시했다. 법원은 “업무상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기준 제34조제3항에 따라 이번 사건은 과로 및 스트레스로 인해 이 사건 상병이 업무수행 중 발현된 것으로 추단함이 타당하다”며 “이 사건의 상병은 업무와 상당인과관계에 있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관련판례]
서울행정법원 2011. 3. 25 선고 2009구단2903 판결
대법원 2006. 9. 22 선고 2006두7140 판결
대법원 2001. 7. 27 선고 2000두453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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