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론은 수만 명의 사망자와 자고 나면 늘어나는 일본 원전 피해에도 정부를 향해 볼멘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일본인의 침착함에 연일 감탄했다. 우리 언론은 대재앙의 공포 속에 놀랄 만큼 침착한 일본을 집중 보도했다.

기자들이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읽었다면 보도의 혼란은 없었을 것이다. 미 국무성은 44년 6월 문화인류학자의 탈을 쓴 이 여교수에게 돈을 주고, 미래의 식민지 일본과 일본인 연구를 요구했다. 미국 정부는 저자에게 포로로 잡은 일본군 심문일지를 뒤질 기회까지 줬다. 그녀가 46년 이 책을 출판하자 사람들은 정확하고 세밀한 심리묘사에 반해 일본인 머릿속을 해부했다고 경탄했다. 실제 그녀는 당시 미국 정부의 일본 관련 모든 문서와 기술을 다 동원했다.

태평양 전쟁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점령 정책의 근간이 이 책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을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따라서 세밀했지만 관념과 상상으로 억측을 밀고 나간 흔적이 역력하다. 단순 정보를 지나치게 과장한 것도 많다.

그녀는 태평양 전쟁을 “미국인의 물질 신앙과 일본인의 정신 신앙의 싸움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이 책 앞부분에 일본인의 겸손을 설명하면서 “일본 가정에서 어머니는 아기를 업고 다닐 때부터 자기 손으로 아기의 머리를 눌러 고개 숙이는 행동을 가르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일본의 철저한 가정교육을 설명하면서 겉과 속이 다른 ‘위장된 겸손’까지 꿰뚫지는 못했다. 그녀는 “중국에선 걸핏하면 왕조가 바꿨지만 일본은 한 번도 그러한 일이 없었다”고 중세 일본을 특징지었다. 중세 일본의 지배자는 천황이 아니고 쇼군이었다. 그녀는 천황 일가는 바뀌지 않았지만 쇼군은 바뀌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다. 오히려 이웃나라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안정된 왕조국가였다.

이 책은 74년 문학평론가 김윤식의 번역본으로 문고판으로 한국에 소개된 이후 여러 차례 재판이 나왔다. 그녀는 이 책 74년판 85쪽에서 “일본의 상인계급은 천민계급 바로 위에 놓인 하층계급이었다. 이는 미국인에게 참 기이하게 보인다”고 일본사회의 계급구조를 해석했다. 장사치의 나라 미국인 눈에는 상인의 낮은 사회적 지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중세 동아시아 전체를 관통하는 ‘사농공상’을 일본만의 특징으로 해석한 게 기이하다. 미국이 이런 책으로, 이런 유의 지식인에게 의지해 전후 일본을 다스렸다니, 그 무지가 놀랍다.

이 어설픈 책 한 권이면 오락가락하는 지진 보도를 막을 수 있었다. 조선일보는 지난 17일 3면에 “죽을 준비 됐다, 원자로와 싸우겠다”는 제목으로 은퇴를 앞둔 원전 기술자까지 원전 현장으로 몰려든다고 추겨세웠다. 25일 조선일보는 입장을 싹 바꿔 <‘원전결사대’ 월급 275만원의 잡역부들 특별수당도 없어>(13면)라고 뒤집었다. 중앙일보는 30일자 14면에 ‘원전 작업자에 일당 540만원 주겠다’고 보도했다. 엊그제 ‘줄 잇는 결사대 영웅’라고 초를 쳤던 것과 정반대의 진실에 겨우 접근했다.

좌파단체 소행으로 몰았다가 단순강도로 돌아섰다가, 다시 범인이 조선족일 수 있다는 말에, 북의 소행까지 몰고갔다가 결국엔 40대 전과 5범의 강도사건으로 끝난 한 보수단체 간부의 어머니 피살 사건보도는 우리 언론의 현주소다. 디도스 공격도 북의 소행이라고 우겼지만 범인은 고3 수험생이었다.

또 있다. 조선일보는 리비아 전쟁을 일으킨 “사르코지 뒤엔 ‘행동하는 철학자’ 앙리 레비가 있었다”(28일 20면)고 썼다. 그러나 앙리 레비는 68혁명의 파리 거리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이 “방에서 파리 시가 지도를 펴 놓고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사태의 추리를 지켜보기만” 했다.(박정자:1978) 레비는 철학자인지는 몰라도 ‘행동’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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