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원전의 안전성을 주장하는 것은 살인행위를 옹호하는 일이 됐다. 일본의 지진사태는 자연재해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의 문명이 그와 결합해 일으키는 지옥을 보여 준다. 원전과 관련해 에너지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기술신화에 휘둘려 왔던 상황은 종료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의 원전 정치는 여전히 은폐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오래된 원전의 안전성은 물론이고,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확산과 관련한 이명박 정권의 오도는 이들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는 의지와 지각이 있는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바닷물로 냉각하는 방식을 거부했던 도쿄 전력은 원전시설을 인간의 생명보다 위에 둔 처사였다. 기업의 이익 창출이 국민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을 보면서 일본국민들은 분노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원전수주를 한 것을 정치적 성취로 기록하려는 이명박 정권으로서도 원전의 가치가 비판받는 것이 불편하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도 도쿄전력 사장 수준의 정부인가. 위험이 다가오는데도 이를 이미 알면서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뒤늦은 대응을 하는 정부는 그야말로 무능력하고 부도덕한 정권이다. 더군다나 원전 폐기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이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기가 막힌 것은 이 정권이 원전을 녹색에너지 운운하고 있는 점이다. 녹색 에너지라니. 녹색이 생명이라면, 원전은 지금 죽음의 에너지라는 것이 입증돼 가고 있다.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능에 하늘과 바다와 땅이 모두 오염되면 그곳에 살 수 있는 생물체는 없다. 당장 일본에서 들여온 물건들은 모조리 판매되지 못하고 있다. 누구는 호들갑이라고 하는데, 이 눈에 보이지 않은 무서운 기체에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들은 원전 방사능 문제에 민감한 문제제기가 있자 제2차 광우병 소동으로 갈 수 있다는 둥의 언변을 늘어놓고 있다. 도대체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중과 기본의식이 부재하다. 아직 위험한 지경도 아닌데 왜 이리 민감하게 구는가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원전 방사능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60년대 미국에서는 원전 방사능 문제와 관련한 영화들이 여러 편 나왔다. 방사능 유출에 따른 돌연변이가 영화의 소재였다. 미국은 이미 그때 원전·핵·방사능 등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할 수 있는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에 비하면 너무도 후진적이다. 북한이 에너지 부족으로 원전 자체 개발에 나서자 핵무기 제조 가능성으로 미국이 앞장서 막았고, 그 대신 원전을 건설해 주겠다고 했으나 이는 이행되지 못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의 국제적 약속 파기라는 점에서는 문제가 있으나 오늘날의 후쿠시마 사태를 통해 돌아보면, 도리어 다행스럽기조차 하다.

원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와 수준 높은 담론은 들리지 않는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원전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고 있는데, 이는 정치사안 이전에 국민생명이 걸린 문제다. 따라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깔끔하기로 이름높고 치밀하기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일본에서 원전 안전성과 관리 문제가 이토록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오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지 전면적인 검증과 확인이 없다면 우리의 미래는 너무도 아찔하다.

물론 당장에 원전 에너지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논의조차 하지 못한다면 결코 대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대안이 없다고 논의를 봉쇄하면, 그건 대안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음모라는 의혹을 받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나라의 정치 상당부분이 이런 식의 원전 정치학의 논리에 파묻히고 있다.

4대강 사업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문제제기가 봉쇄되고 마구잡이로 밀어붙여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자연과 미래에 어떤 재앙적 결과가 나올지는 언급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중이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무능력하고 반민주적인 권력이 아닐 수 없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를 놓고 정부라는 조직이 이렇게 은폐와 늑장 정보공개 등으로 대응하는 것은 국민의 분노와 저항만을 살 뿐이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보다 장기적인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그 이전에 당장 원전 안전성 점검과 관리의 엄격성을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백두산마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진단이 있는 처지에, 원전의 안전성 신화만 되뇌고 있다면 그건 앉아서 죽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정권은 이런 식으로 도처에서 우리를 앉아 있다가 난데없이 죽게 만들려는가. 거짓말을 너무 쉽게 하고, 했던 말도 하루아침에 뒤집는 권력에 생명을 맡기고 있는 이 나라 국민들은 도대체 어찌 해야 하는가.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