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물론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가릴 것 없이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정계에서는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최대 쟁점이던 ‘무상급식’이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 하는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박근혜·정동영 의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 잠재적인 대권주자들도 나름의 복지전략을 좌판에 내놓고 있다. 내년에 벌어질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 ‘복지’가 핵심 쟁점이 될 것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시민사회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31일 참여연대가 개최한 ‘진보의 미래,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원칙과 전략’ 토론회가 그것이다. 야권에 복지 논거를 제시했던 시민단체들이 스스로 기준점을 잡고, 실천전략을 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오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이 거론한 것은 바로 복지국가 전략이었다. 복지논쟁에서 자주 언급된 쟁점은 ‘노동’과 ‘연대’였다.

◇‘박탈의 트라이앵글’을 벗어나야=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는 “한국 사회는 복지국가로서의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고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사회가 불가한 시점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사회가 ‘박탈의 트라이앵글’에 빠져 있어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그림 참조>
 


박탈의 트라이앵글이란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실업자가 사회 밑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비정규직은 불안정한 신분과 저임금의 이중굴레에 둘러싸여 있고, 중소자영업자는 대자본에 밀려 폐업·도산과 재창업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박탈의 트라이앵글이 중산층을 와해시키는 온상으로 작동한다"고도 했다.

그는 성장에서 복지로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햇다. 이 교수는 “복지국가에 대한 고민 없이 일방적인 성장 지상주의·시장 만능주의를 표방한 결과 현재 감내해야 하는 사회적 위기 상황의 심각성은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사회과학부)는 “보편주의 복지국가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주거·교육·의료·소득과 관련해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생활 보장받아야 한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가치”라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근로빈곤을 없애는 것이 복지국가의 핵심 요소”고 밝혔다. 그는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없다”며 “나쁜 일자리는 반복적 실업과 근로빈곤의 저수지이기 때문에 나쁜 일자리를 그대로 둔 채 복지정책을 모색하는 것은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복지국가, 연대해야 실현=복지국가 실천전략도 제시됐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시민사회 복지동맹’을 제안했다. 주체는 노동운동 세력과 시민운동 세력이다. 신 교수는 이를 “노동정치와 시민정치의 이륜마차”라고 표현했다. 그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노조가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시민사회 세력이었다”며 “복지국가 정치는 노조에서 출발해 노조에 발을 딛고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러나 "노조 조직률이나 단체협약 적용률, 상급조직의 하급조직에 대한 지도력 측면에서 우리나라 노조가 매우 취약하다"며 "대외적인 정치력과 사회적 영향력에서 한계가 큰 것이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노조가 정치사회적 행동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 사회적 고립을 극복할 수 있다”며 “노동정치는 복지국가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시민운동단체들과 복지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민정치의 에너지와 능동적으로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복지동맹에 ‘사회연대운동’을 제안했다. 그는 “복지국가 동맹이라는 정치적 기획을 추동하고 뒷받침하는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이 광범위하게 형성돼야 복지국가 전략의 실현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복지국가 논의가 계급·계층 간 대립과 갈등을 겪다 좌초하지 않으려면 대중운동 주체가 공고하게 형성돼 반대 세력과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연대운동의 주체로 박 처장은 노동과 시민의 연대·풀뿌리 시민의 연대·생존권의 연대·보편주의 연대를 제시했다. 그는 “시민사회의 복지국가 전략의 중심은 다양한 계급·계층·부문·지역 대중운동의 연대에 두는 것이 타당하다”면서도 “거기에 조직노동의 이해관계와 역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박 처장은 “조직노동의 이해관계와 역할을 간과하면 자칫 ‘노동 없는 복지’나 ‘노동 없는 민주주의’라는 전략상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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