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짜증이 난다. 후쿠시마를 보면 참을 수가 없다. 일본이라는 국가(권력)가 짜증이 나고 그 권력을 무력하게 쳐다보고 있는 그 국민의 인내가 참을 수 없다. 왕의 백성도 아니고 공화국의 국민도 아닌 자들을 참을 수 없다. 천황과 관료에 주눅 든 그들을 본다는 것이 괴롭다. 내가 한반도에 태어나서 그들을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한반도가 일본열도 옆에 붙어있는 것이 싫다.

2. 그러나 무엇보다도 짜증나서 참을 수 없는 것은 후쿠시마원전의 결사대라 불리는 그들을 지켜보는 것이다. 결사대라고 해서 노동자의 이름도 잃어버린 그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 괴롭다. 그들이 하청업체 비정규직이라거나, 일당이 10만원인지 얼마라거나, 그들이 작업화도 신지 않아서 피폭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작업질서라는 노동조건과 작업조건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들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노동자라서 일본의 노동자라서 이 나라에서 매일 노동자권리 타령을 하고 있는 자로서 정말 싫다. 자본의 욕심이 세상을 죽이고 있는데 그 죽어가는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자본을 위해서 노동자가 바쳐져야 한다는 게 싫다. 후쿠시마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존을 내놓아야 한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방사능 폭격을 해대는 누더기 원전 몇 호기 속으로 자본의 탐욕을 위한 시꺼먼 죽음의 굴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도쿄의 자본과 권력의 명령에 따라 세상을 위해, 그들을 위해 노동자는 들어가야 한다. 자본이 그의 재산 손해를 걱정하고 있을 때 노동자는 그의 생명, 그의 세상을 내놓고 그와 가족의 생존을 걱정하면서 들어가야 한다. 저주받은 땅에서 저주의 노래도 없이 순순히 자발적으로 그는 죽음의 굴속으로 들어간다. 그런 그들이 결사대로 불리면서 자발성과 희생으로 포장됐다. 눈물을 흘려야 할까. 노동의 생존의 철칙은 자발성으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희생으로 포장돼 가려졌다. 분노해야 할까.

3. 돌이켜 보면 일본과 일본 노동운동은 무엇이었던가. 이 세상에서 일본은 인민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했고, 일본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 무엇을 했었는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을 받드는 장군의 나라에서 천황을 받드는 수상의 나라로 바뀐 것 외에 이 세상에 어떠한 인민의 자유를 떠받쳤던가. 내 할아버지의 나라를 짓밟고, 아시아를 짓밟고서 공화국이라도 세워주기라도 했던가. 영국·프랑스·미국·독일·러시아는 이 세상에 새로운 인민의 자유를 선언하고 떠받쳤다. 그러나 그들을 열심히 배워서 모방했던 일본은 아시아 인민에 어떠한 자유도 주지 못했다. 심지어 일본은 자신의 인민에게도 공화국의 국민으로서 권력에 맞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시위하도록 하지도 못했다. 권력자의 지도와 지도받는 국민의 나라라는 것 말고 세상에서 일본은 무엇이란 말인가. 권리를 구제받지 못하는 행정지도와 행정지도에 길들어진 일본에서 아시아의 인민은 자유를 배울 수 없었다. 그러니 아시아 인민에게 일본은 자신을 짓밟았던 나라로 기억될 뿐이다. 아시아 나라들에서 인민이 자유를 위해 권력과 맞설 때 자유를 위해 권력을 전복시켰을 때 일본은 자본의 집중을 위해 수출을 위해 권력의 지도에 복종했다. 단 한 차례도 국민이 권력을 전복시켜 봤던 기억도 없다. 지금 튀니지·이집트·리비아 등 아랍나라를 휩쓸고 있는 시민혁명조차도 없었다. 민주공화국헌법조차도 1946년 미군이 천황제에다가 이식시킨 것이다. 한 번도 그 헌법을 국민의 항쟁으로 폐기하고 새롭게 쟁취한 적이 없다. 그러니 이 세상의 제국들에서 인민의 자유를 확장하기 위한 선언과 헌장을 내놨음에도 유독 일본에서 아무 것도 내 놓을 것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니 후쿠시마의 폭발에도 일본 국민은 꿈쩍도 않는다.

과연 일본인민은 천황의 신민이 아니라 공화국의 국민일까 하는 의문까지 고개를 든다. 이런 일본에서 노동운동은 어떠했던가. 이 세상에 노동자에게 어떠한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 주었나. 영국과 프랑스의 노동운동이 단결금지법의 폐지를 통해 노동조합을 통한 교섭권 및 쟁의권을 쟁취해 주었고, 미국의 노동운동도 8시간 노동제, 여성노동자의 권리를 주창하는 등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시켰다. 독일의 노동운동은 바이마르공화국헌법을 통해 세상에 사회적 기본권 등 노동자의 기본권을 쟁취했다. 러시아의 노동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자본 없는 노동의 세상을 노동의 새로운 기본권과 권력을 실험했으며, 러시아의 실험은 이 (자본주의)세상에서 노동자의 기본권을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일본의 노동운동은 이 세상에 새로운 노동자의 자유를 내놓지도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시키지도 못했다.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러시아를 쫓아가고 부지런히 모방했어도 일본의 노동운동은 여전히 일본의 그것에 머물렀다. 일본의 국민이 그런 것처럼 일본의 노동자도 노동의 이름으로 세상에 맞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됐다. 권력의 행정지도에 기댄 채 헌법이 보장해준 노동기본권을 새로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로 확장시키지 못해왔다. 지금 세계 노동운동에서 개량화되고 보수화됐다고 하는 영국·미국·프랑스·독일 등의 노동운동은 이 세상에서 새로운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내 놓았고, 쟁취해왔다. 지금은 아니래도 그들의 선배들은 나름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일본 노동운동은 선배들도, 그들도 이 세상에 아무런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내놓지도 못했다.

4. 후쿠시마를 보면서 한국을 본다. 후쿠시마원전의 노동자를 보면 이 나라 노동자가 자꾸 보인다. 후쿠시마의 폭발에도 분노를 폭발시키지 않는 일본의 국민과 노동운동을 보면서 이 나라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생각한다. 이 나라의 법은 일본의 법을 철저히 모방했다. 식민지조선의 민형사법제는 일본의 법제였다. 단지 치안유지를 위해 일본법은 그대로 적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해방 후 이 나라의 법제를 세우면서 다시 일본의 법제를 모방했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법령을 공포해왔다. 일본의 법률이 한국의 법률이 됐고, 일본의 법해석이 한국의 법해석이 됐으며, 일본의 판례가 한국의 판례가 됐다. 일본학자는 한국학자의 선생님이 되고 일본학자의 글은 한국학자의 주장의 근거로 인용된다. 일본최고재판소판결은 이 나라 대법원판결이 된다. 노동법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 나라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가 일본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에서 멈춰버릴 것이 걱정된다. 지금은 이 나라 노동운동이 일본노동자가 보장받는 자유와 권리조차도 쟁취하지 못했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할 뿐이다. 그래서 후쿠시마원전을 보면서도 이 나라 노동운동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아직 파업 등 쟁의에 대한 민형사면책조차도 확보하지 못했고 그래서 노동기본권 행사조차도 보장받지 못한 이 나라의 노동운동의 앞날을 걱정하게 된다. 이 나라 노동운동의 내일이 결코 일본노동운동의 오늘이 돼서는 안 되므로, 이 나라 노동운동이 이 세상에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새롭게 내놓고 쟁취해야 하므로 걱정을 멈출 수 없다.

5. 후쿠시마의 폭발은 일본의 폭발이다. 후쿠시마노동자의 눈물은 일본노동자의 눈물이다. 그래서 후쿠시마의 비극은 일본의 비극이다. 후쿠시마노동자의 비극은 일본노동자의 비극이다. 오늘 일본의 비극에 세상은 눈물을 흘리고 위로한다. 그러나 일본노동자의 비극에는 세상은 눈물을 흘리고 위로하지 않는다. 노동자는 이름을 잃었다. 이것이 일본노동자의 비극이다. 자본이 죽인 세상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바치고 있음에도 일본노동운동은 노동자가 살리는 세상에서 자본과 권력을 향해 노동자의 이름을 달라고, 노동자에게 새로운 자유와 권리를 달라고 감히 말하지 못한다. 이것이 일본노동운동의 비극이다. 그리고 오늘 일본의 비극을 지켜보는 이 나라 노동자들이 있다. 일본의 비극을 지켜보고 있는 이 나라 노동운동이 있다. 일본 노동자와 노동운동의 비극을 보지 못한 채 후쿠시마를 쳐다보고 있는 그들이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비극은 아시아의 비극이었다. 일본에서 국민의 자유를 새롭게 내놓지 못했으므로 아시아는 일본으로부터 자유를 배울 수 없었다. 일본노동운동이 새로운 노동자의 자유를 내놓지 않아서 아시아의 노동운동이 일본으로부터 노동자의 자유를 배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아시아의 노동자는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새로이 확보하면서 전진해야 한다. 그래야 일본노동운동의 비극이 아시아노동운동의 비극이 되지 않고, 이 나라 노동운동의 비극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후쿠시마를 보면서 이 나라 노동자를 보게 된다. 짜증나서 참을 수 없어 괴롭고 싫어도 자꾸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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