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의 자서전은 책장사가 갖출 삼박자를 완벽하게 구비했다. 언론은 그녀의 책에서 정운찬을 소재로 잡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분도 압권이다. 그녀를 청와대 홍보업무와 연결한 상상력이 아찔하다.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녀의 직업은 큐레이터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노소영,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딸 김선정 같은 이들이 이런 직업을 가졌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도 서울대 미대를 나와 호암미술관 관장,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경력을 내세운다. 이병철 회장에게 전시회장을 안내한 인연으로 삼성가의 며느리가 됐으니 홍씨도 당시엔 큐레이터였다.

원래 큐레이터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직업이다. 90년대부터 내내 ‘약탈문화재 반환’을 연구해 온 이보아 추계예술대 교수는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2002·민연)라는 책 한 권으로도 이 직업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운다.

그러나 한국에서 큐레이터는 돈 있고 권력 있는 집안의 여자들이 하는 부업으로 변질됐다. 재벌그룹의 이미지 관리를 위해 양념으로 미술관 하나쯤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게 한국 사회의 비뚤어진 풍경이다. 요새는 그냥 미술관이라 부르지도 않고 아트센터라는 서양 말로 부른다.

노소영은 아트센터 나비의 관장이고, 김선정은 아트선재센터의 부관장이다. 김선정이 있는 미술관의 이름엔 서양 말 대신 ‘선재’라는 한글 이름이 들어 있어 낯설다. 경주에 가면 ‘아트선재미술관’도 있다. 여기엔 김 전 회장의 아픈 가족사가 있다. 김우중 회장의 장남인 김선재씨는 90년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

선재씨는 MIT에서 공부하던 중 어머니를 마중하려고 공항에 가기 위해 동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동생은 운전석 에어백 때문에 살았다.

김우중 전 회장의 ‘큰아들 사랑’은 남달랐다. 경기도 안산농장 이름을 ‘선재 농장’으로 지었고,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는 인기 연예인 L씨의 양자 입적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L씨는 최근 한류스타로 떠올랐고 드라마 아이리스 등에서 열연했다. 죽은 선재씨와 외모가 비슷해 정희자씨가 유독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술관에도 23살에 요절한 아들 이름을 넣었다. 그러나 대우는 망하고, 별장은 날리고, 아들 묘 자리까지 2001년 11월 빼앗겼다. 허무하기 이를 데 없는 결말이다.

이들에 비해 뒷배경이 보잘 것 없던 신정아가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이란 자리를 꿰차기 위해선 예일대 박사학위가 절실했을 것이다. 그래서 위조까지 감행했을 것이다.

신씨의 자서전 내용이 언론을 타자, 정운찬 전 총리측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발끈했지만, 정작 발끈해야 할 쪽은 노 전 대통령측이다. 이런 유의 인간에게 “노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나 기자회견 때마다 크고 작은 코멘트를 들으려 했다”는 부분에선 서글픔을 느낀다. 그 시절 청와대에서 언론정책을 주물렀던 정태수 한보 회장의 가방모찌 출신인 양정철 비서관이나 공영방송을 빙자한 국영방송 KBS 사장과 이사회에 이름을 올렸던 숱한 문외한들에 비하면 어쩌면 신정아는 정상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재벌과 낡은 수구 기득권으로부터 역사상 가장 자유로울 수 있었던 노무현 정권은 이런 인사들 때문에 무너져 갔다. 그런 뜻에서 사이비 진보인사들을 향한 시인 김지하의 욕설은 정당하다.

그녀와 놀아난 변양균은 집권 내내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때려잡는 데 누구보다도 혈안이었던 기획예산처의 주무장관이었다. 직원 많이 자르고, 민간위탁을 하고, 연봉제를 도입하고, 노동유연화를 받아들이는 공공기관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주는 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실시했던 장본인이 변양균이다. 낮에는 노조 때려잡고 밤에는 딸만한 아이와 부적절하느라 무척 바빴을 변씨는 노무현 정권 첫 개각 때 기획예산처 실장에서 차관으로 승진했고, 이후 장관을 지내다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맡았다. 최근 지자체와 공공기관에서 민간위탁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의 절규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이런 노동자를 양산하는 악의 근원인 ‘총액인건비’를 입안하고 구축한 이가 변양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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