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신입사원만을 대상으로 개별연봉제를 적용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기재부의 내부 공문에 따르면 정부는 우선 3~4개 기관을 대상으로 시범실시를 한 뒤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개별연봉제라면 시범기관으로 선정된 공공기관의 신입사원이 본인의 보수수준을 기관에 제시하고, 개인별로 연봉계약을 맺는 것을 뜻한다. 정부는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기관에는 올해 공공기관 경영실적평가에서 최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당근도 내놓았다.
본지가 3월21일자 2면 기사에서 이런 내용의 ‘개별연봉제 시범실시 기관 공개모집’이라는 내부문건을 입수해 공개하자, 노동계가 발칵 뒤집혔다. 가장 큰 반대이유는 집단적 노사관계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개별연봉제가 기존 임금체계를 변동시키는 만큼 노조와 단체교섭을 통해 결정할 사안인데, 정부가 법으로 보장된 이런 절차를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개별연봉제 도입으로 인한 기존 직원과 신입직원의 차별을 지적하는 주장도 나온다. 개별연봉제 도입, 과연 필요할까. 문제는 없을까.


“신입사원 두 번 죽이는 비겁한 정책”
유주선 금융노조 부위원장


지난해 정부가 공공기관 간부들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강제로 도입했는데, 노동자들의 반발이 심하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기획재정부가 ‘꼼수정책’으로 개별연봉제를 도입하려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졸초임 삭감에 이어 힘없는 신입사원을 두 번 죽이려는 정책이다. 경제난 속에서 실업난에 몰린 청년의 약점을 쥐고 일방적 선택을 강요하는 비겁한 정책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재부의 앞뒤 가리지 않는 무데뽀(막무가내) 정책이 우리사회에 소모적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정부는 노조와 합의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는 바람에 노사갈등을 부추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규모 법적분쟁을 초래했다. 초임삭감을 당한 신입사원들도 임금을 다시 돌려 달라며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분쟁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정부는 이 모든 책임을 어떻게 지겠다는 것인가. 개별연봉제는 물론 대졸초임 삭감과 성과연봉제 도입을 당장 중단하거나 철회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성과 올린 만큼 급여 받는 것이 합리적”
황인철 한국경총 기획홍보본부장


개인의 성과와 급여는 동조화돼야 한다. 성과를 올린 만큼 급여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연봉제 대상으로 거론되는 공공기관 신입사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 근로자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성과와 연동한 연봉제가 필요하다고 본다.
익히 알려진 바처럼 공공기관들의 생산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공공부문 노조의 장악력이 세다 보니 호봉은 높아지는데, 생산성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상당수 민간기업이 연봉제를 도입해 성과와 실적에 따라 차등적인 보수를 적용하는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현재는 공공부문 간부직 일부에만 연봉제가 적용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연봉제 도입은 확대돼야 한다.
단, 신입직원에 대한 연봉제 도입시 처음부터 차등을 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처음 들어온 직원을 입사성적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출발선은 같게 하되, 입사 후 근무성적이나 실적 등을 반영해 급여를 책정해야 한다. 갓 입사한 신입직원을 입사 성적만으로 평가할 경우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 있으니 이 점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신입직원에 대한 차별 철폐해야”
박준형 공공운수노조 준비위 정책기획팀장


이미 초임삭감 때문에 신입직원들이 직장 내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비슷한 일을 해도 임금차이가 큰 상황이다. 개별연봉제까지 들어오면 사업장 안에서도 위화감 때문에 업무를 하는데 문제가 생길 것이다.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신입직원에 대해 초임삭감에 개별연봉제까지 도입하겠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취약한 집단에 대해 정부가 우선적으로 불리한 정책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정사회’에서도 맞지 않는 얘기다.
초임이 삭감된 상태에서 개별연봉제까지 도입된다면 임금이 오르는 효과보다는 신입직원 내부에서 경쟁을 시켜 누구는 현재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업무를 잘하게 하려면 동일노동에 동일임금을 받는 공정한 임금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공공운수노조 준비위에서는 초임삭감과 관련해 소송 당사자를 모으고 있다. 다음달 초·중순께 노조와 신입직원 당사자가 함께 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특히 올해 임단협 공동요구안 가운데 핵심 요구안으로 신입사원 초임삭감 원상회복과 차별철폐가 포함돼 있다. 한국노총 금융노조 등에도 공동대응을 제안할 것이다.


“성과 측정기준 없어 혼란만 가중”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2009년과 지난해 공공기관 신입직원의 임금을 삭감했다. 이 문제도 해결이 안 되고 논란이 되고 있는데 신입직원에게 개별연봉제까지 도입한다면 혼란이 가중될 것이다. 성과연봉제라는 것은 도입하려는 취지가 명확해야 한다. 공공기관에서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한 가장 큰 논란은 공공기관에서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합리적인 지표를 개발하는 것이 어렵고 노사가 합의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기존 직원(선배)들도 성과연봉제를 안 하고 있는데 처음 들어오는 직원을 도대체 어떤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겠다는 것인가. 일을 배워 가면서 노하우를 쌓아야 하는데 채용 때부터 개별연봉제를 도입하면 기준도 없는 상태에서 논란만 가중시킬 것이다. 임금테이블을 2개로 만들겠다는 것은 노조를 배제하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측면에서 봤을 때 공공기관은 공공서비스 제공이라는 설립 목표가 있다. 연봉제의 취지와 공공서비스 제공이라는 본연의 목표가 어떻게 연계되는지도 알 수 없다. 성과연봉제가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공공성이 가장 큰 공무원부터 실시하고 공공기관에 하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나. 그렇지 않으면서 공공기관부터 하라고 하니 불신이 생기는 것이다.
신입직원에 대한 개별연봉제 도입 시도는 정부가 임금체계를 바꿔 나가려는 신호탄인 것 같다. 정부 산하기관을 거쳐 민간부문에도 적용하겠다는 시그널을 주는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