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을 언론에 발표했다. 내용을 살펴보니 일부 진전이 있긴 했으나 그동안 논쟁의 핵심이었던 별도의 규제기구 설치는 백지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소비자 금융보호 업무는 현행대로 여러 부처(기관)로 나뉘고 금융감독원이 대표하는 체제를 유지하게 됐다.

최근 금융개혁에 대한 국제적 이슈 가운데 하나는 소비자 금융보호이다. 소비자 금융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으나 논쟁은 이를 담당할 독립 규제기구를 둬야 하느냐에 있다. 왜 독립 규제기구를 두는 것이 중요한가. 먼저 현재의 금융규제 체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그 이유를 설명해 보자.

은행 수익성에 종속되는 ‘소비자 보호’

우리나라에서 소비자 금융보호 업무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소비자원·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여러 기관이 수행하고 있고, 이외에도 국민권익위원회·감사원 그리고 예금보험공사 등이 일부 수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떠한 기관도 소비자 금융보호에 대해 배타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이를 부수적인 업무로 인식해 왔다. 이 때문에 소비자 보호가 규제의 사각지대라는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즉 모두의 책임이므로 누구의 책임도 아닌 상태가 된 것이다.

물론 금융감독원의 경우 소비자 금융보호를 자신의 핵심 임무 가운데 하나로 천명하고 있기는 하다. 2009년에는 내부에 소비자서비스본부 조직을 강화하는 다소의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서비스본부는 8개 본부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약한 부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금융감독원 조직의 본령인 은행 등의 건전성 규제와 소비자 금융보호는 종종 충돌하게 된다. 건전성 규제는 궁극적으로 수익성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수익성이 있는 은행만이 안전하고 건전하기 때문이다. 은행이 불공정한 상품을 판매하거나 소비자에게 재무능력 이상으로 금융상품을 구매하도록 할 때, 심지어 사기성 있는 계약관계를 맺도록 할 때 그들의 수익성은 고도로 높아진다.

만약 적정한 수준의 수익성을 추구하는 은행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규제체제와 시장규율은 해당 은행의 명성을 가치절하시킨다. 다른 은행보다 건전성 지수가 하락하게 되고 이른바 브랜드 파워가 약화되면서 해당 은행의 경영 리스크는 증가한다.
금융감독원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은행 등의 건전성 규제와 소비자 금융보호라는 두 개의 미션이 하나의 기관에서 수행하게 하면 둘 중의 하나가 다른 것을 구축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거의 예외 없이 소비자 보호가 패배해 왔다.

소비자 보호의 전문성 확보에 실패

소비자 보호가 여러 기관들에 분산돼 있음으로 해서 개별 기관들이 자료의 수집과 분석, 금융상품의 점검 등에서 깊은 전문성을 발전시킬 유인이 제한되고 있다.
실증적인 분석은 소비자 보호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이라 할 것이다. 점점 금융상품이 복잡해지고 이해하기 힘들어지는 최근의 추세가 바뀌지 않는 한 실증분석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제학 교과서는 복잡한 시장환경에 대해 적절한 정보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금융통계를 살펴보면 금융기관 계정을 집계한 데이터는 존재하지만 가계 계정을 집계한 부채 규모, 신용 카드 부채 데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기관 계정 데이터는 규제대상의 경영에 필요한 것인데 이마저도 개별 규제기관들이 부분적으로 보유하고 있어 총합되지 못하고 있다. 전체 국민경제 차원에서 자료들을 모으고 정리해야 한다.

데이터의 부족뿐만 아니라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전문 연구집단의 결여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소비자 금융보호를 위한 연구집단은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통계학자·심리학자 그리고 법률가를 포함해야 한다. 금융상품을 어떻게 설계하고 법적인 규제를 어떻게 구성하며 적절한 정책적 방향을 어디로 설정해야 하는지가 논의돼야 할 것이다.
때로는 은행에 대항하는 행동이 실행돼야 하며, 현행의 규제당국이 갖고 있는 주도권에 반하는 법률이 제안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고도의 전문성과 실증적 데이터로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소비자 금융보호의 방향

소비자 금융보호가 획기적으로 강화돼야 한다는 점이나, 이것이 금융시스템의 안전성에 기여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한다고 해도 국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얼마나 될 수 있을지 쉽게 확신하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금융기관의 권력이 압도적으로 세고, 정보력도 비할 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금융위기 전개 과정을 돌이켜 보면 소비자 금융보호는 단순히 대부업자-차입자 관계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약탈적 대출행위 이전에 대출채권의 유동화 문제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대출채권의 유동화가 이미 보편화된 상태에서는 양 당사자만을 전제로 하는 차입자 보호 법제는 많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소비자 금융보호를 담당하는 독립적인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소비자 금융보호 규제기구를 별도의 유일한 기구로, 금융업 권역 전체를 포괄하는 기구로 설립함으로써 얻고자 하는 것은 강력한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금융규제가 약화되고 은행 등의 수익성이 강조될 때 위기에 빠지게 되는 소규모 가계와 기업은 늘어나게 된다. 이미 많은 가계가 금융 충격의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