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이민 민주노동당 기획국장, 대우자동차공동투쟁본부 대변인)



■연일 계속되는 시위를 뒤로하고 - 파리를 향해

'드디어 떠나는구나!' 2월23일 오후 3시 루프트한자 719기 50J 좌석에 몸을 싣고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출국경비를 마련하느라 김우중 체포 뺏지를 팔던 일이며, 프랑스 현지 단체들과의 연락을 조직하던 일, 특히 2월19일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 경찰병력이 전격 투입되고 출국을 유보하기로 결정했던 일 등 김우중 체포결사대가 프랑스로 출국하기까지의 숱한 어려움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우리로서는 대우자동차를 경찰병력이 장악하고 있고, 화염병이 등장하는 격렬한 항의시위가 연일 계속되는 비상한 상황에서 프랑스로 날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파업현장에 공권력을 투입한 김대중 정부의 폭력행위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과 전 세계에 알린다는 활동목표를 새롭게 세웠다. 그리고 체포결사대의 활동이 국내에서 투쟁하고 있는 대우자동차를 비롯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기를 빌면서 유만형 대우자동차 해고자, 박점규 민주노총 조직차장과 함께 머나먼 이국 땅으로 향했다.

비행기 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몽골의 초원과 러시아의 빙원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우리는 어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내내 시달려야했다.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내리는 순간 우리 체포결사대원 세 사람은 굳은 각오와 결의를 다지며 붉은 머리띠와 김우중 체포 현수막을 고쳐 매었다. 드디어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순간 우리를 내내 괴롭히던 불안감은 일시에 사라졌다. 공항을 가득 메운 프랑스 언론사들의 플래쉬 세례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우리는 이번 활동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을 직감하였다.


■'팔자에 없이(?)' 언론의 협조아래 활동

공항에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국내에 잘 알려진 홍세화 선생과 체포결사대 활동을 돕기 위해 멀리 네덜란드에서 온 장광렬 민주노동당 당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또한 프랑스 현지단체들의 연대활동을 조직해오던 ATTAC(금융거래과세시민연합)의 피에르 루세씨 그리고 SUD(연대단결민주-프랑스노동총연맹 중의 하나)의 베르벤느 여사를 비롯한 프랑스 사람들이 우리를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은 금요일 밤이었는데 프랑스는 주5일 근무제라 주말은 일정 잡기가 어렵다는 피에르 루세의 설명을 듣고 임시숙소인 베르벤느의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부터 피에르 루세의 집에서 현지 활동계획을 차례로 점검하면서 프랑스 국영2,3 TV를 비롯한 여러 언론매체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프랑스 언론의 반응은 우리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홍세화 선생도 무척 놀라워하면서 "얼마전 엘프라는 석유회사의 부회장인 알프레드 시르벵이 공금횡령 혐의로 4년간의 도피생활을 하다 체포되어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과 95년 프랑스 톰슨전자를 대우가 단 1프랑에 사들이려다 전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실패한 일 등이 프랑스 언론이 체포결사대를 주목하는 이유인 것 같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는 이렇게 '팔자에 없이(?)' 언론의 적극적인 협조 아래서 프랑스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파리시민, 공권력을 동원한 노동자탄압 이해 못해

우리는 파리 거리에서 한국정부의 노동자 탄압과 김우중 체포를 알리기 위해 플랭카드와 새로 제작한 피켓, 유인물과 뺏지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생라자르 광장, 라데팡스 역, 인권광장 등에서 진행한 거리 선전전에 대해 프랑스 시민들이 보여준 반응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수만명의 파리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주요 도심에서 우리와 함께 베르벤느와 홍세화 선생이 손에 피켓을 들고 유인물을 나눠주며 파리 시민들에게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 또 에펠탑 앞에서 신자유주의 반대 등의 구호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게시하는 등 김우중 체포와 한국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 실상을 알리기 위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파리 시민들은 달랐다. 많은 시민들이 우리에게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우리를 지지한다고 연대의 정을 표했다. 꼭 김우중이 잡혔으며 좋겠다는 얘기, 아직도 한국 정부가 그렇게 노동자를 탄압하느냐며 우리가 전시하고 있는 사진을 유심히 쳐다보는 사람들, 우리의 모금함에 돈을 넣어주며 힘내라고 하는 사람들, 김우중의 사진과 한국의 대우사태를 프랑스어로 적어 놓은 유인물을 유심히 읽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우리의 활동에 큰 관심을 보여줬다. 우리가 다음 일정을 위해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파리시민들은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선전물을 받아들고 유심히 읽거나 손을 흔들어 보이는 등 지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이미 파리 시민들은 우리 모습을 TV와 신문, 라디오를 통해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파리 시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공권력을 동원해 노동자를 탄압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크게 분노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에서 노동자가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최대의 희생자인데 어떻게 정부가 물리적으로 노동자를 탄압하는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또 김우중씨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사회운동가, 노조지도자, 시민들은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우리가 액수를 설명하면 몇 번에 걸쳐 되물었다. 한국의 재벌들이 엄청난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인들에게 뇌물로 바쳤을 것이라는 사실을 프랑스 국민들이 상상하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프랑스 단체들의 헌신적 지원과 연대

우리 활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던 ATTAC의 따르따코프스키 사무총장과의 면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피에르루세 씨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우리를 본격적으로 지원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의 선두에 서서 금융자본에게 대한 과세를 요구하는 것에서 시작해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 올바른 제기를 하고 있는 ATTAC은 우리에게 정말 큰 힘이 됐다. 따르따코프스키는 우리나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노조 - 프랑스 판사노조와의 면담에 이어 프랑스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인권동맹의 변호사와의 만남을 새롭게 주선했다. 또 대사관 앞 시위에 여러 단체의 주요 지도부들이 참가하도록 조직했고 리옹에 있는 인터폴 사무총국 앞에서 현지 ATTAC 회원들이 우리와 함께 하도록 이미 모든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다.

우리가 따르따코프스키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많은 기자들이 SUD 사무실에서 우리를 취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카날 플러스 TV와 르몽드, 리베라시옹, 멕시코의 유력주간지인 PROCESO가 연이어 우릴 취재했고 영국의 BBC TV가 인터뷰를 요청했다. 또 프랑스 카날 TV는 주요도심 선전전부터 판사노조 면담까지 동행취재를 하겠다고 연락해왔다. 멕시코 기자는 멕시코 국민들이 모두 우리의 활동을 알고 있지는 않지만 사회운동가들은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취재에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 대우자동차의 정리해고와 해외매각 문제는 멕시코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로부터 많은 국민들이 고통에 빠져있기 때문이었다.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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