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사가 돼 맨 처음 노동자를 만났을 때 나는 그들이 모두 ‘전태일’인 줄 알았다. 선한 눈빛의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그때 노동법을 알았더라면…’ 하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다가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그들에게 성공보수를 받지 못해 분통 터진 일도 있었지만 난 여전히 그들과 함께 있다. 노동사건만 전담하는 내게 혹자는 특별한 사명감이 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추켜세우기도 한다.

난 특별한 사명감으로 일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해고된 노동자들, 구속된 노동자들에 에워싸여 있으니 그들은 어느덧 나의 일부가 됐다. 나의 일부이기에 남의 일도, 남을 위한 것도 아닌 나 자신의 문제가 됐을 뿐이다.

나처럼 노동사건만 전담하는 노무사는 전국에 약 130명 가량 된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노무사를 1천명 정도로 추정하니 대략 10% 정도 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노동사건만 전담하는 노무사는 약 8년 전 단체를 결성했다.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이 노무사를 만날 때 사람은 좋아 보이나 행색이 좀 초라해 보이면 필경 노노모 회원일 것이다.

노노모 소속 노무사들은 대체로 가난하다. 돈 없는 노동자를 상대하고, 그들을 지원하니 큰돈을 벌지 못한다. 노동자와 별반 처지가 다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싸우다 구속이 되기도 한다. 노동법이 야금야금 개악이 되고 사용자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삭제되면서 노동법이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게 된다. 지당하게도 노동자를 지원하는 노무사의 사회적 역할도 축소된다. 법적 대응을 해도 피해가 원상회복되지 못하고, 범법행위를 한 자를 단죄하지 못하게 되니, 힘이 빠지고 무기력한 날들도 있다. 더 나아가 법적 대응이 되레 사용자의 범법행위를 적법행위로 둔갑시키는 현실이 통탄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노동자를 위한 법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노동자의 힘이기에 우리는 노동자를 지원한다.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에 노동현장에서 법이 작동되는 현상을 주목하고 분석하고 폭로한다. 투쟁하는 노동자를 지지하고, 진상규명 활동을 하고 진실을 알리기 위한 각종 활동을 한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지력을 다해 법을 해석하고, 몸을 던져 악법을 저지한다. 노동자와 함께 싸우고 견디고 힘을 모으다 함께 아파한다.

내가 맨 처음 노동조합에 취업할 때는 경쟁상대가 없었다. 지원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노동사건을 지원하는 노무사로 활동하기 위해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일군이 탄생했고, 노무사가 돼서도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대기하고 있는 취업재수생도 있다.

노동법이 개악되고 있지만,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지만, 구조조정에 실업에 날로 노동자의 삶은 강퍅해지고 있지만 이 땅을 밑동부터 갈아엎을 수 있는 힘은 오로지 노동자의 힘임을 믿고 힘을 보태고자 노력하는 전문가그룹이 있다. 그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불을 밝히고 법전을 안고 씨름하고 있다. 천막을 지키고 있고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와 함께 오늘도 길 위에 그들이 있다

* ‘노노모의 노동에세이’는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회원들이 씁니다. 노동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무사들이 노동현장에서 겪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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