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장애가 있는 사람은 건강에 치명적인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수면 결핍이 심장병과 뇌졸중에 의한 사망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주목된다. 영국 워릭대학의 프란세스코 카푸치오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지난 8일 유럽심장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하룻밤 수면시간이 6시간 미만이고, 너무 늦게 잠자리에 들거나 너무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가진 경우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은 건강에 치명적인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8개 나라 47만명을 대상으로 7년에서 25년에 결쳐 추적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수면시간이 6시간 미만인 경우 심장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48%나 높았고, 뇌졸중을 일으킬 위험성도 1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는 연구팀이 지난해 수면학회지에서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조기 사망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밝힌 연구결과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카푸치오 박사는 지난해 5월 발표한 논문에서 13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16건의 관련 연구보고서를 종합 분석해 “하루 수면시간이 6시간이 안 되는 사람은 6~8시간인 사람에 비해 일찍 죽을 가능성이 평균 12%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잠을 너무 적게 자면 스트레스 호르몬이나 기타 유해 화학물질의 분비를 촉진해 심혈관계에 독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적게 자면 탈난다"

이러한 연구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교대제 사업장에 근무하면서 불규칙적으로 수면을 취하고 있는 노동자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주야 맞교대 사업장은 자동차 업종 노동자들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2월 서울행정법원(판사 조민석)은 자동차 조립공정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발생한 수면장애(수면·각성장애)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최초의 판결(서울행법 2010구단4400판결)을 내놓았다. 재판부는 한 자동차회사 노동자 장아무개(36)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장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원고의 수면·각성장애가 주야간 교대근무로 인해 발병한 것인지 여부를 살펴보면, 원고 주치의와 법원의 진료기록감정의의 의학적 견해에 의해 이를 인정할 수 있다”며 “피고(근로복지공단) 자문의들의 의학적 견해는 주야간 교대근무와 상병 사이의 관련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없어 인정에 방해가 되지 않고 달리 반증이 없다”고 판시했다.

장씨측 주치의 역시 “환자가 수행한 격주 주야간 교대근무는 수면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교대근무 형태이고, 교대근무가 아닌 주간 고정근무 기간 중에는 수면장애가 발생하지 않았다”며 “밤근무를 제한하고 있는 시기에는 수면장애가 완화됐으므로 환자의 수면장애가 업무관련성이 높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진료기록감정의도 “교대근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낮과 밤이 수시로 바뀌는 생활 속에서 생리적 리듬주기가 파괴되고 교대근무자들의 수면·각성주기는 야간근무에 의해 심하게 장애를 받으며 주간근무를 하는 1주일 동안 충분히 회복되기 어렵다”며 “원고의 수면·각성장애는 개인적 특성보다는 주야간 교대제 근무로 인한 생리적 반응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야간노동은 발암물질, 수면장애는 산재"

판결을 끌어낸 장씨는 97년 입사한 뒤 조립공정 라인에 근무하면서 주간조일 때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야간조일 때는 오후 8시30분부터 이튿날 오전 5시30분까지 근무했다. 통상 2시간 정도의 잔업을 수행했다. 주야간 교대제 근무제의 경우 1주일 단위로 근무조가 변경돼 수면을 취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근무환경이 장씨의 건강을 좀먹고 있었던 것이다.

2007년 유엔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바 있다. 덴마크 정부는 계속된 야간근무로 유방암을 얻은 여성들의 산업재해를 인정하고 보상을 해주고 있다. 덴마크 당국은 IARC로부터 수면패턴의 변화가 몸속에서 멜라토닌 생산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를 얻었다. 멜라토닌이 암의 진전을 막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에 덴마크 당국은 2009년 잦은 야간근무로 인해 유방암에 걸린 덴마크 여성 40여명에게 보상을 했다. 이를 계기로 덴마크 노동계는 야간근무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우리나라 노조들도 야간근무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경각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현대차 노동자들의 주야맞교대 근무로 인한 건강장해 실태와 주간연속 2교대제 도입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주야 맞교대에 따른 불규칙한 수면 패턴은 △각성도 감소 △집중력 감소 △수면박탈 △생리적 리듬의 부조화로 인한 교대시차 증후군 △교대부적응 증후군 △위나 십이지장궤양 같은 위장관 질환 △심혈관계 질환 △수명 단축 등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속노조, 수면장애 실태조사 나서

이와 관련해 금속노조가 ‘금속노동자 수면장애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해 주목된다. 노조는 전체 조합원 15만명 중 9만여명에 달하는 완성차업체 조합원을 비롯해 중소부품업체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수면장애와 관련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노동시간 단축과 주간연속 2교제대 도입을 앞당기겠다는 취지다.

실태조사는 설문조사와 심층인터뷰·국내외 사례조사로 이뤄진다. 설문조사에서는 △수면장애 및 피해 △근무시간 및 근무형태 △수면장해 또는 교대노동·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노동자 건강피해 △노동자 본인의 직업력 등을 다룬다. 노조는 수면장애 노동자나 대상 교대제 노동자를 대상으로 심층인터뷰를 진행하고, 수면장애의 구조적 원인과 피해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노조 소속 지부·지회에서 발생한 수면장애 사례와 해외사례도 별도로 조사한다.

노조는 이달 중순까지 설문지 작성과 인쇄작업을 마무리한다. 이달 말 설문지를 배포해 다음달 말까지 설문지를 수거할 계획이다. 이어 5월 말까지 분석작업을 거쳐 6월 중으로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공청회와 토론회도 예정돼 있다.

실태조사 결과는 집단 산재신청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금속노조가 지난해부터 진행해 온 직업성 암환자 찾기 운동과 맞물려 제조업 노동자들의 건강실태를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는 이달 현재 85명의 제조업 암환자를 찾아내 이 중 5명에 대해 산재신청을 한 상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면장애로 인한 암환자나 산재환자가 파악되면 노조는 노동자 건강권 보호와 노동시간 단축을 골자로 한 입법운동에 나설 방침이다. 문길주 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이번 수면장애 실태조사는 노동시간과 근무형태, 특히 야간노동을 포함한 장시간 교대근무에 따른 수면장애가 노동자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며 “이번 조사가 제조업 교대제 변경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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