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3일 삼정전자 LCD사업부 탕정공장 기숙사에서 23세 여성노동자가 18층에서 투신자살했다. 그리고 8일 뒤 아직도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는 고 김주현(26)씨가 같은 기숙사 13층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 20대 사망률 1위가 자살이라는 비정상적인 한국에서 자살 정신병과 치유, 그들을 자살로 이끄는 기형적인 사회구조, 기업의 노무관리에 대한 반성과 개선 없이는 젊은 노동자들의 죽음은 계속될 것 같아 안타깝다.

고 김주현씨의 경우 전형적인 업무상재해, 즉 산재 요건에 부합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일단 당초 근로계약에서 예정된 근로시간보다 상당히 긴 14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함으로써 과로와 업무스트레스에 노출됐다. 입사 초기 다른 노동자들보다 업무에 능숙해지기 위해 보다 많은 주의와 노력이 필요했던 가운데 방진복 자체가 고인이 노출됐던 각종 화학물질을 차단하는 기능이 없어 자극성접촉성피부염이 발병해 업무에 종사하기가 더 어려웠다.

지난해 9월에는 자재부서로 전보됐고, 전공과 무관한 업무·직상급자의 질책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결국 스트레스로 인해 같은해 11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고인이 업무복귀 강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복귀해야 했고,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을 극도로 제약했던 점 등으로 볼 때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제36조제1호 “업무상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에 해당되는 것으로 판단될 여지가 상당하다.

문제는 고인의 사건을 살펴볼 때, 이 같은 자살사건에 있어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업주의 비이성적 행태에 기인하고 있다. 일단, 고인의 의무기록지를 보면 “지난해 9월 부서가 바뀌어서 업무가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힘들다, 모든 게 다 놔 버리고 싶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등 전형적인 우울증의 증상과 표현이 나타난다. 그리고 복직면담시 사내의사와 심리상담사가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주지하고 있음에도 인사담당자는 이를 위한 적극적 조치를 하지 않았다.

즉 우울증 환자의 3분의 2가 자살을 생각하고 실제 10%가 자살을 기도한다는 것이 의학적 상식임을 감안하면, 회사의 복직결정 조치는 납득하기 어렵다. 둘째, 사망 직전 CCTV 내용을 보면 4차례 투신시도가 있었고 2차 시도 시 방제요원들이 13층 복도창문에 앉아 있는 망인을 방에 데려다 놓고 1~2분 만에 철수해 우울증 환자에 대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한 응급구조자격을 지닌 이들이 ‘정신보건법 제24조에 있어 정신질환자는 의사의 판단에 의해 즉시 입원치료가 가능함’에도 이를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셋째, 사업주로서는 2개월의 휴직만 허용해 산업안전보건법상 질병자의 근로를 금지·제한하는 규정에 위반하는 행위를 저질렀다.

관련 판례도 있다. 대법원은 “사용자는 노동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신체·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물적환경을 정비하고 필요한 조치를 강구할 보호의무를 부담하며, 이러한 보호의무는 실질적인 고용계약의 특수성을 고려해 신의칙상 인정되는 부수적 의무를 부담해, 고의 또는 과실로 이러한 보호의무를 위반함으로써 노무수급인의 생명·신체·건강을 침해해 손해를 입힌 경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1997. 4. 25 선고 96다53086 참조)

결국 사업주의 고의 과실로 인해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자살한 것은 민사상 불법행위뿐 아니라 형사상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고 김주현씨의 사안처럼 회사에서 취업규칙과 급여명세서조차 공개하기를 거부한다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사안에서 노동자가 업무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았는지에 대해 입증이 어렵고, 한편으로는 회사로부터 방해를 받을 수도 있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울증이 업무로부터 유발된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될 경우 이로 인한 자살은 업무상재해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반증은 사업주가 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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