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8일 경북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이후 7일이면 꼭 100일째를 맞는다. 피해 확산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이나 방역·매몰 작업에 참여했던 공무원의 건강·안전 대책 마련은 뒷전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동안 벌써 8명의 공무원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전국 75개 시·군에서 345만두 살처분

6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4일까지 전국 75개 시·군·구 지역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 988만마리의 돼지 중 33.4%인 330만마리와 소 335만마리 중 4.5%인 15만마리가 각각 살처분됐다. 매몰지만 4천720곳에 이른다.

지난 3일에만 29개 농장에서 2천825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됐다. 최근 3일간 매몰처리 등에 동원된 인원은 1만3천900여명이다. 구제역이 한창 기승을 부릴 당시에는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3만명에 달하는 인원이 살처분 작업에 동원됐다. 구제역 발생기간인 100일 동안 동원된 인원은 연인원으로 공무원과 민간인을 합쳐 20만명이 넘어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방부도 지난 1월 중순까지 육·해·공군 54개 부대 소속 연인원 11만3천여명의 병력을 구제역 방역·매몰 작업에 투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구제역 방역·매몰 작업에 참여했던 공무원들은 각종 사고에 따른 물리적 피해는 물론 스트레스에 의한 정신적 피해도 입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렇지만 이들 공무원에 대한 건강·안전대책은 부족하다는 것이 정치권과 공무원 노동계의 시각이다.

황영철 한나라당 의원(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은 최근 "구제역 매몰 처분으로 인한 공무원·민간인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지적하는 우려들이 많지만 일부 시·도에서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각급 보건소에 위기상황을 알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정신과 상담에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의원이 행정안전부에서 제출받은 '구제역 관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상담 및 진료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7일 기준 구제역 방역·매몰 작업에 투입됐던 공무원(5만6천377명)과 민간인(3만2천411명)을 합해 8만8천788명이나 됐지만 PTSD 상담건수는 전체 인원의 1.7%(1천513명)에 불과했다.

 

“동물 울음소리 들려 잠 못 이뤄”

상담을 받았던 공무원들은 대부분 ‘계속 눈물이 남’·‘깊은 잠을 잘 수 없음’·‘동물 울음소리가 들림’ 등의 고통을 호소했다. 특히 PTSD 상담을 중앙정부가 일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별 보건소가 자체적으로 실시하면서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나라당 구제역대책특별위원회 간사인 김영우 한나라당 의원이 1월 초 구제역 살처분 작업에 참여했던 공무원 2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의 71.1%가 '정신적 스트레스'나 '악몽 등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치거나 질병에 걸린 이들도 14.2%였다.

공무원들은 가축 살처분에 따른 '심리적 부담'(51.2%)을 느끼고 있었고, '수면부족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28.9%)나 '살처분으로 인한 소음 및 악취'(12.8%)에 따른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들 다수(88.6%)가 살처분 작업에 참여한 기간은 '5일 미만'이라고 답했으나, 그 이후에도 검문초소 주야 교대나 소독 작업에 동원된 것으로 조사됐다. 김영우 의원은 "지역 공무원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육체적·정신적 치료·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의학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방치하면 우울증 등 다른 정신질환으로 악화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구제역 방역, 사망 공무원만 8명

과로와 각종 사고로 인한 사망도 잇따랐다. 구제역 방역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시·군에 따라 2~3교대로 작업을 벌이고 있어 피로가 누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야근조의 경우는 밤을 꼬박 새우고도 여유 인력이 없어 다음날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근무지로 복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게 공무원노동계의 전언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기준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를 포함해 구제역 방역·매몰 작업을 하다가 과로나 크고 작은 사고로 사망한 공무원은 8명에 달한다.
구제역이 처음 발생했던 경북 안동에서는 지난해 12월1일 안동시청 공무원 금아무개(50)씨가 구제역 방역초소에서 밤샘근무를 하던 중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숨졌다. 밤샘근무로 인한 과로와 이와 관련한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공무원만 6명이다.

같은달 28일에는 경북 영양군청 공무원 김아무개씨(37세)가 방역 초소 주변에 모래를 뿌리기 위해 1톤 트럭을 운전하던 중 차량 전복으로 목숨을 잃는 등 2명이 사고로 숨졌다. 사망자를 포함해 지금까지 13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 차원의 종합적 건강·안전 대책 필요

시민단체들과 공무원 노동계도 심각성을 파악하고 중앙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공무원노조는 △구제역 방역 참여 공무원 종합건강검진 실시 △사상자에 대한 신속한 공상처리·의료비 전액 지원 △근무시간에 대한 시간외수당 지급 및 대체휴무 보장 등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달 24일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구제역·AI 조기해결 촉구 범국민비상대책위원회와 함께 '구제역·AI 국가재난 순직공무원 추모제'를 열었다. 구제역 범국민대책위 관계자는 "구제역 사태로 인해 8명의 공무원이 숨졌는데, 국민은 그 사실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노총도 같은날 행정안전부를 방문해 구제역 피해 축산농가와 방역·매몰 과정에서 숨지거나 다친 공무원에 대한 건강·안전 대책 마련과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공노총은 "공무원에 대한 무료건강검진뿐만 아니라 구제역 사태 극복 이후 방역 공무원에 대한 특별휴가를 시행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공무원 노동계는 "구제역 피해 확산 방지도 중요하지만 공무원들이 더 이상 죽거나 다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라며 "정부가 공무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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