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도 요구법안을 내놨다. 한·EU 비준동의안과 사립학교법·예금자보호법·직업안정법·여성발전기본법 등 5개 법안이다.<표 참조> 그러나 처음부터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던 직업안정법과 한·EU 비준동의안은 막판 상정법안에서 탈락했다.
직업안정법 ‘뜨거운 감자’ 될 뻔
이번 임시국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될 뻔’ 했던 노동법안은 직업안정법이다. 여야 원내대표는 국회 정상화 조건의 하나로 직업안정법 전부개정안(정부)을 상정·논의하기로 했다. 명색이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것이니만큼 상정은 거의 기정사실화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반발은 거셌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와 진보정당이 직업안정법 개정안을 노동유연화를 가속화시키는 대표적 노동악법으로 지목하며 강하게 반대했다. 직업안정법 개정안은 법의 명칭을 ‘고용서비스 활성화 등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민간고용서비스를 활성화·대형화하는 것을 핵심골자로 하고 있다.
논란 중 하나는 유료직업소개업자가 구인자로부터 받는 소개요금을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구인자의 소개요금을 자율화할 경우 구직자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더 큰 논란은 직업훈련과 직업소개, 파견·모집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복합고용서비스사업’이다. 허가를 받아야 하는 파견업과 신고만 하면 되는 직업소개업을 한 회사가 운영할 경우 불법·탈법 간접고용의 여지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직업소개·직업훈련·파견의 경계가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다.
상정법안서 막판 제외된 직업안정법
민주당은 직업안정법 상정을 앞두고 비판에 직면했다. 민주노총·민주노동당·진보신당은 18일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업안정법 개악안 국회 상정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부의 직업안정법 전부개정안은 사람장사를 목적으로 하는 중간착취업을 산업적으로 키우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밝힌 채 법 이름도 고용서비스 활성화법으로 바꿔놨다”며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할 직업안정법을 상정한 것은 대한민국 국회임을 포기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 같은 반발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터져 나왔다.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로 옮긴 정동영 의원은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파견·용역·노무관리 등 온갖 간접고용의 합법화·양성화를 통해 비정규 노동자 대량 양산을 예고하는 법”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한나라당이 파견법 개정이 뜻대로 안 되니 우회로를 찾은 것에 대해 민주당은 알면서도 합의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결국 민주당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애초 박지원 원내대표는 18일 의원총회에서 “일단 상정하고 적절히 처리(저지)해 달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반발이 사그라지지 않자 민주당은 "상정불가"로 입장을 바꿨다. 이어 25일 국회 환노위 여야 간사는 2월 임시국회에 직업안정법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상자기사 참조>
‘날치기 법안’을 되돌려라
민주당은 지난해 말 정기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날치기 처리한 법안의 원상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법안에 대한 폐지 또는 수정안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게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 폐지법안’이다. 민주당은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은 4대강 경계로부터 2킬로미터 이내 지역을 친수구역으로 지정해 개발할 수 있도록 했다”며 “4대강 주변지역의 난개발을 부르고 환경재앙이 속출하는 것은 물론 수자원공사의 금융비용 회수를 위한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에서 논의과정 없이 변칙적으로 의결된 법안을 폐지해 난개발을 막고 환경도 보존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을 통해 LH의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는 입장이다. 아직 당론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김희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서 그 수정방향을 밝혔다. 김 의원은 개정안에서 “LH 사업 중 공익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사업 중 정부보전대상을 법률에서 명확히 한정하겠다”며 “보전대상 사업에 대해서는 구분 회계처리를 하고 그 사업결과를 국회에 제출하도록 해 공사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또 ‘국립대학법인 서울대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폐지법안’을 제출해 “국립대 민영화를 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에서는 애초 거점지역을 충청권으로 하는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을 이행하도록 했다.
구제역 쇼크와 한·EU FTA 비준안 철회
한나라당도 5개의 주요 요구법안을 제시했다. 눈에 띄는 것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번 임시국회 통과는 만만치 않아 보였다. 구제역이 좀체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데다 협정문 번역 오기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은 한-EU FTA 비준동의안 유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민주당은 “한-EU FTA가 맺어졌을 때 우리 축산농가 30~ 50%가 붕괴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이번 구제역 파동으로 보면 과언이 아니다”며 “그런데도 한-EU FTA와 관련해 아무런 대책이 없다”고 우려했다.
그런데 ‘결정타’는 다른 데 있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한-EU FTA 한글본과 영문본 협정문 내용이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외교통상부는 번역 오류를 정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한 한-EU FTA 비준동의안을 철회하고, 번역 오류를 정정한 새로운 협정문의 비준동의안을 다시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특히 2월 임시국회에서 구제역 국정조사를 관철해 관련 책임자를 문책하고 철저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생법안 처리해 달라” 요구 봇물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요구는 '민생국회'로 모아진다. 민주당 서민특위·전월세 특위, 민주노동당 전월세특위·민생희망운동본부, 진보신당·참여연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기초생활보장법개정공동행동은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세대란·가계부채·이자폭리·과도한 교육비·물가급등·통신비 부담 등에 대한 신속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촉구한다”며 “주택임대차보호법·기초생활보장법·고용보험법·고등교육법·이자제한법 등을 즉각적으로 개정해 달라”고 호소했다. 여야 모두 민생국회를 강조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임시국회에 얼마나 반영될지 관심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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